
그런데 이러한 현실에 대한 분석들과 상관없이 ‘위기’의 원인에 관한 정형화된 한 가지 해석은 이런 것이다. 포퓰리즘적 성향을 지닌 대통령과 그 주변의 운동권 출신인 젊은 실세들이 취하는 ‘좌파적’ 정책의 결과, 기업은 돈이 있어도 투자를 하지 않고 공장을 지어도 외국에 지으며, 부자들은 불안에 떨며 돈을 쓰지 않고, 노동조합의 집단이기주의적인 요구 때문에 일자리는 더욱 부족해지고, 결국 우리는 “10년 뒤에 먹고살 것이 없어지는” 남미 포퓰리즘 정권의 뒤를 밟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러한 해석에서 중핵 역할을 하는 것은 집권세력이 ‘좌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확고한 믿음이다. 진보적 학자 출신의 장관이 한술 더 떠 설치고 다녀도 그것은 그저 일시적 위장이거나 일관성 없는 정치적 몸짓에 지나지 않으며, 개발독재 시절부터의 정통 관료 출신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그저 실권 없는 바지저고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될 뿐이다. 이러한 해석 앞에서 현 정권이 취한 좌파적 경제정책의 실례를 지적해보라는 질문도 무의미하기 짝이 없다. 현 정권은 좌파이며 좌파가 하는 것이 좌파적 경제정책이라는 동어반복 이외에는 준비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결책은 단 하나 좌파가 손을 털고 제 발로 걸어 나오는 것밖에 없다. 역시 이러한 해석의 최고봉은 실컷 좌파 정책을 써보도록 바지저고리 장관들은 자리 욕심 내지 말고 내려오라는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의 정곡을 찌르는(!) 주장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나 과거청산 문제 등이 집권세력의 정치적 총공세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경제 문제에서 지금의 시기는 보수우파적인 이데올로기의 총공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검증도 필요 없는 정형화된 해석으로 무장한 경제학자, 기업가 단체, 신문기자 등이 앞다투어 주문을 외워대는 형국이다. 내가 참으로 걱정스러운 것은 마치 박정희 경제성장 신화가 정착됐던 것처럼, ‘좌파적 정책의 실패’라는 신화가 자리잡아나가는 과정을 목도하는 것이다. 객관적 진실은 과연 존재하는가 따위의 철학적 질문이 치열한 현실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