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오세영, 할머니를 그린다
등록 : 2000-12-06 00:00 수정 :
만화가들과 만화평론가들이 한국을 대표할 만한 만화가로 꼽는 여러 작가 가운데 빠지지 않는 작가가 오세영(46)씨다. 그러나 정작 일반 만화팬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은 아직도 생소하다. 그의 만화가 대본소나 대여점에서 인기가 없어 쉽게 구하기 어려운 탓이다. 만화경력 20여년 동안 오씨는 단 한번도 ‘잘 팔리는 만화’를 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이 그를 이 시대 작가주의 만화의 최고수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은 만화에 대한 그의 집념과 작품성 때문이다. 단번에 눈을 잡아끄는 산뜻함이나 톡 쏘는 재미는 없어도 차분히 들여다보면 이내 보는 이를 붙들어버리는 질박한 그림과 강렬한 주제의식이 오씨 만화의 진면목이다. 그래서 수지타산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만화 편집자들도 오씨의 이름 하나만으로 그의 만화를 연재하거나 출판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까지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이 오세영씨가 이번에 또다시 ‘안 팔릴 만화’를 시작했다. 우리 민족사 최대 상흔 가운데 하나인 종군위안부 문제를 그리는 만화 <조센삐 아리랑>을 12월 중순께부터 인터넷 만화잡지 <이코믹스>(
www.ecomix.co.kr)에 연재를 시작하는 것이다.
“취재를 하면서 만나 뵌 할머니들은 인생이 드라마가 아닌 분이 한분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분들이 일본군들한테 당한 고초보다도 전쟁 이후 우리 사회 속에서 외면당하고 고생하셨던 종군위안부 이후의 삶에 더 큰 비중을 둘 계획입니다. 종군 경력으로 인해 망가지는 한 자연인의 인생과 인권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늘 한국 근·현대사를 천착해온 오씨가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여년 전. 만화를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언젠가 꼭 그려보겠다고 작정해오다가 마침내 붓을 든 ‘평생의 과제’다. 그래서 만화를 연재하는 2년 동안 오씨는 다른 작품을 제쳐놓고 이 만화에 전력을 기울일 작정이다. “읽고나면 즐겁기는커녕 우울한 만화가 될 겁니다. 인기야 못 끌겠지만 어차피 만화로 길을 잡으면서 한번은 그려보겠다고 작정했던 것이니까 이번에 제대로 그려서 의무감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습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