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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달력으로 보는 탄광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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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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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탄광을 한번 찍어보자는 생각이 불현듯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카메라를 메고 무작정 기차역으로 달려갔죠. 그때는 탄광이 어디에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냥 탄광가는 기차표 하나 달라고 했죠.”

프리랜서 사진작가 송정근(31)씨가 최근 ‘The Miners’(탄광노동자들)라는 테마로 단행본 크기만한 새해 달력을 펴냈다. 이 흑백 사진첩 달력은 고교 2학년이던 지난 88년 겨울방학 때 감행한 ‘탄광촌으로의 가출’에서 비롯됐다. 딱히 계기는 없었다. 문득 탄광촌을 사진에 담아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태백으로 떠났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가서 본 탄광 노동자들의 삶은 충격 그 자체였다. “힘겨운 노동현실을 전혀 몰랐던 저에게 태백은 세상에 눈을 뜨게 해줬습니다. 30kg이 넘는 갱목을 받쳐들고 허리를 꺾어가며 1m도 안 되는 탄광 갱 속을 기어들어가야 하는 광부들을 보면서 다시 태어난 느낌이 들었죠.” 이번 달력에 실린, 그때의 흑백 사진 12장에는 지금은 카지노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지만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안전모에 달린 희미한 불빛에 의존해 갱을 드나들던 탄광촌 노동자들의 고단함이 가득 배어난다.

태백과 사북 탄광촌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은 대학에 들어간 뒤로도 계속됐다. 시커먼 석탄을 뒤집어쓴 채 나뒹굴고 있는 화차 사진은 89년 석탄산업합리화조처로 탄광이 대부분 문을 닫은 뒤에 찍은 것이다. “디지털이다 정보화시대다 하는데 광부들처럼 힘겨운 노동을 거쳐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폐광된 게 불과 10여년 전 일인데 그 시절을 너무 빨리 잊고 있는 것 같아요.”

탄광만이 그가 카메라 셔터를 들이대는 대상은 아니다. 시위현장을 찾아다니기도 했고 탁아문제를 테마로 잡고 달동네를 누비기도 했다. 93년에는 비무장지대를 돌며 분단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최근에는 현대화된 중국을 상징하는 선전의 한 노동자가 고향 쓰촨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행해 개혁·개방의 물결 속에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을 담아내기도 했다. 이때 찍은 사진첩은 ‘중국노동자의 귀향’이란 제목이 붙여졌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된 이유도, 느닷없이 탄광촌으로 떠난 것만큼이나 엉뚱하다. 중학교 시절 영화 <킬링필드>에서 여권증명사진이 없어서 캄보디아를 탈출하지 못한 등장인물을 보고 ‘사진 현상·인화를 모르면 죽을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사진 현상을 배우려다 카메라에까지 손을 대게 됐다.

1천부를 찍은 ‘탄광노동자들’ 달력은 교보문고와 미술관 아트숍에서 구할 수 있다.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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