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정이 이러하다면 우리의 대응은 좀더 거시적일 필요가 있다. 중국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차원, 중화주의의 부활을 비판하는 민족주의적 분노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중국이 역사 문제를 넘어 현실적이고 미래적인 차원에서 동북 지역의 문제를 바라보고, 고구려사 문제가 중국 내부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한반도 전략, 동아시아 전략과 관계되어 있다면 우리의 대응 역시 좀더 큰 틀을 사고하는 데로 한 걸음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고구려사 왜곡 문제는 고구려사 연구에 돈을 쏟아부어 많은 연구 성과를 낸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의 것도 아니고, 국사 교육을 강화하여 철통 같은 국가주의 사관으로 국민들을 무장시키고, 중국의 민족주의 강화를 빌미로 삼아 이미 과잉 상태인 우리의 민족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옳은 해결책일 수 없다. 고구려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중국이 부상하고 냉전 체제가 흔들리면서 새로이 재편되는 동아시아라는 질서와 틀 속에서 한국이 어떤 역할과 의미를 찾을지, 어떻게 생존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동아시아라는 틀, 동아시아라는 시좌(視座)가 국가 미래 발전 전략과 생존 전략 차원만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일상의 감각으로 자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지금 과거 고구려 역사에만 가 있는 우리의 눈을 좀더 현실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 잃어버린 과거 고구려의 땅이라는 차원에서 동북 지역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힘의 결절점이라는 차원에서 지금의 동북 지역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지도를 돌려놓고 보면 옛 고구려 땅인 동북 지방은 동아시아의 중심으로 동아시아 힘들이 각축하는 땅이자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상징이다. 옛 러시아의 땅이자 만주국의 땅으로서 제국과 식민 시대의 상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강고해진 동아시아의 냉전 구도를 상징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동포들의 거주지인 중국 동북 지역이 극히 불안정한 것은 중국 내부적 원인보다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냉전 체제의 변화와 질서 재편 과정에서 일어나는 혼란의 중심에 동북 지역이 서 있기 때문이고, 그곳이 또다시 동아시아 국가주의의 쟁탈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고구려가 그러했고 근대 초기에 그러했듯이, 옌볜을 중심으로 한 동북 지역은 원래가 여러 민족, 여러 국가, 여러 언어가 뒤섞인 혼성의 공간이고 여러 겹의 경계를 지닌 공간이다. 동북 지역이 지금 직면하는 문제의 상당수는 이런 동아시아의 변경적 정체성과 맞물려 있고, 때문에 이 지역의 문제를 푸는 데는 동아시아 공동의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식민과 냉전의 상징인 동북 지역은 동아시아의 화해와 상생을 실험하고 실현하는 데 더없이 좋은 터전이 될 수 있다. 고구려사 문제의 해결 방법이 한-중 두 나라 모두 좀더 동아시아 지평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적·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이 지역에 대한 두 나라의 장기적 실리 차원에서도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