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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벤처, 스물일곱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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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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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진승현씨 사건을 접하면서 주목한 것은 그의 나이입니다. 올해 나이 불과 스물일곱살. 그러나 ‘불과’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보유한 재산이 수백억∼수천억원대에 이르고, 명함에 대표로 찍힌 회사만도 손가락으로 세기 어렵다니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그 나이에 무엇을 했는가 한번 되돌아보니 막 군대에서 제대했을 무렵이었습니다. 수백억원대의 재산은 고사하고 아직 직장생활도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햇병아리 시절이었던 셈입니다. 이번 사건이 터지자 도처에서 ‘도대체 나는 이 나이 들도록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한탄 아닌 한탄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물론 그 전에도 20대들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경우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폭력, 살인, 탈주 등 주로 강력사건이었지, 정치권과 공무원 사회까지 소용돌이에 몰아넣은 사건은 별로 없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일어난 숱한 금융·경제사고의 주역들은 최소한 40대 이상이었습니다. 97년 한보철강 사건이 터졌을 때 정태수 총회장은 74살이었고, 83년 명성사건의 김철호 회장은 45살이었습니다. 장영자씨가 그나마 젊은 축에 속하는데 82년 이철희·장영자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마흔 가까운 나이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록은 점차 경신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의 주인공인 정현준씨도 32살이었는데, 그 기록을 진씨가 다시 깬 셈입니다.

사실 젊은층에 의한 대형 경제사고는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95년 영국 베어링스투자은행을 파산상태로 몰아넣으며 세계 경제를 뒤흔들어놓은 닉 리슨이라는 딜러도 28살난 청년이었습니다. 베어링스투자은행의 싱가포르 현지법인에 근무하던 그는 한때 잘 나가던 딜러였는데, 간이 크게도 무려 6조300억원어치의 선물투자를 했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사고를 쳤습니다.

젊은층에 의한 경제사고가 빈발하고 있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경제의 주역이 점차 ‘연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는 경제구조의 개편 추세와 밀접히 연관돼 있습니다. 금융의 경우 예전에는 은행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주식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경제의 중심축도 굴뚝 산업에서 정보통신 사업쪽으로 급속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자의 중심은 역시 젊은층입니다. 인터넷, 컴퓨터, 정보화 등의 단어로 대표되는 경제의 흐름에서 아무래도 비교우위가 있고, 새로운 경제체제에 걸맞은 감각과 패기, 담력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미국이나 유럽, 홍콩 등지에서 익힌 첨단금융기법으로 무장까지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는’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문제는 젊음이 곧바로 도덕적 우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아니, 젊기 때문에 오히려 유혹에 더욱 약할지도 모릅니다. 진승현씨의 경우만 해도 외국에서 수입한 첨단금융기법만에만 의지하지 않고, 정·관계에 대한 로비라는 토종비리도 활용하는 ‘양수겸장’의 영악함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낙관의 안경’을 벗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 경제의 희망의 거처는 어쨌든 젊은이들이며, 진씨가 검찰에서 밤샘조사를 받고 있는 그 시간에도 밤을 하얗게 새우며 신기술 연구와 개발에 땀을 흘리는 젊은이들이 훨씬 더 많으리라고 믿기에.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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