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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섹슈얼리티와 현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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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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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양 비디오 사건에 이어 또다시 백지영 비디오 사건이 항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사건은 O양의 경우와는 달리, 성상납이라는 또다른 미묘한 변수가 개입되어 있어서 사태의 양상이 약간은 다른 듯 보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두 사건은 여성의 육체와 그것을 물체처럼 구경하는 남성들의 관음증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이라는 점에서 똑같은 문제이다.

유교문화에서 억압당해온 호기심

나는 이 문제를 조금 관점을 넓혀서 살펴보려고 한다. 왜 이런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는 왜 이처럼 육체와 성을 둘러싼 모든 일들은 이상 열기를 보이며 퍼져나가는 것일까? 어째서 우리나라 남성들은 거의 한명의 예외도 없이 그런 종류의 불법 비디오를 보고 싶어하고 그리고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평소에도 우리나라 남성들은 포르노 테이프들을 실컷 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왜 이런 종류의 테이프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나는 이 문제를 두 가지 정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이 현상은 유교문화 안에서 오랫동안 육체를 억압당해 왔던 한국인 특유의 육체에 대한 과다한 호기심이 그 원인일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의 육체의 주인이 된 것은 실상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전통사회에서 인간의 육체는 권력자에게 속해 있거나 공동체에 속해 있는 것이었다. 이른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말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바는, 전통사회에서 몸이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공동체의 생명이 흘러지나가는 임시 정거장이므로, 개인은 그것을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전통사회적인 육체의 의미가 사라지고, 육체가 개인성을 담보한 주체의 거점으로 등장하면서, 한국인들은 육체와 섹슈얼리티에 대해 어떤 현기증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인들은 갑자기 돌아온 몸에 대해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몸은 갑자기, 문자 그대로 ‘귀하신 몸’이 되어 온갖 치장을 하고, 온갖 건강식으로 배를 불리고, 가능한 한 이상적 이미지를 자기화하기 위해 성형수술로 깎고 붙이고 꿰매어지고 잡아당겨진다. 사람들은 몸 위에 우유를 들이붓고, 계란칠을 하고, 때밀이 앞에 게으르게 드러눕는다. 육체는 이제 정신의 탈 것이 아니다, 육체는 정신없이 혼자서 나돌아다닌다.


이렇게 복권된 육체가 재화의 의미를 가지게 되면서 더욱 희한한 현상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몸이 재화를 생산해내는 주체가 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현상만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육체는 ‘육체자본’이 된 것이다. 대중 앞에 기호로 전시되는 연예인들의 육체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교환가치가 높은 육체자본 중 하나이다. 특히 여성 연예인의 육체가 비싼 몸값을 가지는 이유는 이 육체들이 남성들의 시선 앞에서 욕망의 재화를 생산해내는 이상화된 이미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경우. 여성 연예인의 육체 이미지 소통이 그 이미지 주인공의 인권을 유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부르고 있다. 그 이미지를 탐욕스럽게 소유하기를 원하는 남성들의 시선에 의해서 한 여성의 생이 가지고 있는 두께는 완전히 잊혀진다. 남성들은 게걸스러운 눈빛으로 육체의 표면을 탐식한다. 그 이미지 주인공의 인격은 육체의 이면을 잃고 허공 속에서 갈가리 찢겨진다. 이런 야만적인 시선의 파시즘은 이미 한 여성 연예인을 죽였고, 바야흐로 또 한명의 희생자를 찾아내어 입맛을 다시고 있는 중이다.

한국 남성들 특유의 정복욕

한국 남성들이 이처럼 여성 연예인의 사생활을 찍은 비디오에 열광하는 또다른 이유는, 한국 남성들 특유의 정복욕 때문이다. 우리나라 남성들은 아직도 여성이 소유하는 재산인 줄 안다. ‘육체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는 유명 연예인의 비디오를 봄으로써, 이들은 자신들이 그 여성을 ‘소유’했다고 착각한다. 유명 여성 연예인은 대대로 권력자들의 소유물이었는데, 디지털 문명의 기적 같은 복제기술에 의하여, 일반 서민 남성들도 그런 여성의 이미지를 시선을 통해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그들도 권력자들처럼 재화가치가 높은 여성을 정복하게 되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섹슈얼리티의 갑작스러운 부상은 여성관이 미숙한 한국 남성들의 머릿속에서 아주 괴상한 현기증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섹슈얼리티는 과도한 환상에 실려 병들어간다.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저 기름진 육체들. 육체는 다시 소외되고 있다. 그것은 육체가 아니라 좀비들이다. 그 좀비들은 이렇게 중얼댄다. “나는 그 비디오를 보고 싶어. 그런데 왜 보고 싶은지도 잘 몰라. 머리가 아파.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김정란/ 시인·상지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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