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친 김에 얘기하자면, 서민적인 소탈함과 정직함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자연인 노무현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지지자들 스스로도 확신하기 어렵던 대선 결과가 나왔을 것이며, 항상 온화한 미소에 절제된 단어를 구사하는 정숙한 헤어스타일의 자연인 박근혜가 아니라면 개발독재의 지도자가 아니라 세종대왕의 딸이라 한들 이토록 짧은 시간에 파괴력을 지닌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겠는가? 장모님을 위해서 죽은 아내를 대신해 노래를 부르는 인자한 독재자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테이프가 지지세력의 ‘음모’로까지 의심받는 상황이나, 반대로 일본군 소위가 친일파라면 더한 친일파인 헌병 오장은 왜 그냥 놔두는지라든가, 설쳐대는 독립운동가 자손 꼴 보기 싫다는 등속이 얼핏 보면 생뚱맞은 ‘문호’(文豪)의 칼럼은 실상은 당사자들의 정서적인 호오가 이성적인 논리를 압도한 결과 등장하는 현상과 다름없다. 그래, 나도 무슨 사안을 어떻게 들이대도 보수언론 탓만 하거나 노짱의 무오류성을 주장하는 노빠들이 싫은 만큼이나,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보다 훨씬 더 항상 우아한 패션에 입만 열면 국가나 민족, 정체성만 찾는 애국 공주님도 싫다. 그렇지만 연쇄살인범도 자기 딸 앞에서는 더없이 인자한 아버지가 될 수 있으며 역사발전에 한 몸 기꺼이 바친 혁명가도 아내 앞에서는 폭력남편이 될 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내가 보수 문호가 또는 어느 개인이 누굴 싫어하고 좋아하고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저 고구려 시대에는 만주도 우리 땅이었다는 희미한 기억이나 ‘독도는 우리 땅’의 가사 정도 아는 수준에서 중국이나 일본 정부의 무례함에 핏대 올리거나 인터넷 게시판에 쳐들어가서 엎어버리는 것이 진정한 역사 바로 세우기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안가에서 여대생 불러놓고 술 먹다가 암살당한 것을 비아냥거리거나 나라 걱정에 밥맛을 잃으셨던 아버님에 대한 애틋한 회상 따위로 역사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질 리는 만무하다. 우리의 참된 문제는 지난 20년 동안 사과해왔는데 뭘 또 하느냐라는 주장과 무엇을 왜 사과해야 하고 왜 단죄돼야 하는가에 대해서 한번도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는, 그러므로 역사의 재평가는커녕 ‘평가’ 그 자체가 필요하다는 역설적인 현실이 거짓말처럼 공존하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