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대안운동을 찾아서]
머리 맞댄 울산 · 영광 등 5개 지역 주민들… 주민연대로 핵발전소 건설 막는다
▣ 울산= 글 · 사진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핵발전소는 필요악 아니냐. 위험하고 문제 많은 건 알지만,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지난 7월27일 울산행 열차 안에서 만난 박아무개씨는 필자에게 되물었다. 차창 밖 송전탑을 보며 “왜 이렇게 송전탑이 많이 보이는 거죠”라며 핵발전소 얘기를 꺼낸 게 발단이었다. 그의 말은 평균적인 한국인의 정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핵발전은 사양산업이다. 핵발전소 추가 건설은 동남아시아 몇개 나라에서만 진행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핵발전소를 늘리려는 곳은 한국과 일본뿐이다. 한국 정부는 1978년 최초의 핵발전소인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20여년 동안 핵발전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재생 가능 에너지 등 대안 마련은 등한시한 채 말이다.
황폐해진 과수원과 양식장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는 울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핵발전소 주변 5개 지역 주민 공동 워크숍이 열리는 장소를 찾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울산(서생 포함)·영광·울진·기장·월성 등 5개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현장의 ‘동지’들이어서 그런지 상견례는 간단했다. 핵 사고 희생자에 대한 묵념이 끝난 뒤 논의가 시작됐다. 정치인들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반핵운동에 매진한 이들이 제도권에 진출한 뒤 보이는 현상이다.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 김철욱 울산시의회 의장, 윤종오 울산시위원, 이상범 울산북구청장 등이 참석했다.
울산은 특히 반핵운동이 탄력을 받고 있다. 더 이상 지역 주민과 시민환경단체들의 외로운 투쟁이 아니다. 이곳 국회의원 7명은 신고리 핵발전소 건설을 저지하는 데 공동 대응하기로 했고, 울산시장을 비롯해 울산의회까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조승수 의원은 최근 핵폐기장 후보지로 거론되는 전북 부안과 고창, 경북 월성 등 7개 지역을 돌면서 기초조사를 했다. 그는 핵발전소 추가 건설 중단과 핵폐기장 건설 백지화 및 전면 재검토, 장기적으로는 ‘탈핵’의 문제까지 국회에서 다룰 예정이라고 밝혀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5개 지역 공동 워크숍은 처음 있는 일이다. 영광범군민대책위원회 의장인 김성근 교무는 “핵시설을 둘러싸고 정부가 지역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주민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20여년 동안 핵발전소의 폐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5개 지역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의 중심에 서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모였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는 긴장감 때문에 시종일관 팽팽했다. 정부가 신고리 1·2호기(부산시 기장군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소재) 핵발전소 신규 건설을 비롯해 신월성 핵발전소 1·2호기를 강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신고리 1·2호기 건설은 지난 7월14일 산업자원부 전력정책심의위원회를 통과해 현재 산자부 장관의 승인과 고시 절차만 남겨둔 상태다. ‘삽을 꽂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부산·울산 주민들의 반대를 묵살해온 정부는 결국 건설계획 승인 절차를 밟고 말았다. 서생면생존권수호위원회 김석규 위원장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등은 안전성만을 강조하면서 밀어붙이기식으로 건설을 주도해 주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서생면 주민들은 이미 핵발전소로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또다시 추가로 핵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에 분노하고 있다. 이곳 주민 가운데 80%가 배 과수원을 경영할 정도로 배 재배 농가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핵발전소가 들어선 뒤 온배수로 인한 온난화 현상으로 배꽃이 필 시기(4월6~8일)에 서리가 내려 냉해를 입었다. 어패류가 폐사하고 양식장이 황폐해지고 어획량이 줄어드는 등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이다.
사실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왔다. 철야농성, 서명운동, 상경집회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한 투쟁이 일상화하다 보니 생업을 포기하는 이도 생겨난다. 씨 뿌릴 시기를 놓쳐 농사를 망친 농부, 반찬 만드는 법도 잊었다는 전업주부가 생긴다. 찬성과 반대로 갈려 친척간의 정도 깨져버린다. 울진반핵연대 이규봉 대표는 “지역 공동체 발전을 위해 쓰여야 할 에너지가 국가전력 공급이란 미명 아래 정부 정책과 한수원에 대한 투쟁에 쓰이고 있다”면서 “그 결과 지역사회의 미래에 대한 종합적인 설계도가 없어 암울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워크숍 참석자들은 부산·울산·경주 지역이 세계에 유례가 없는 ‘핵 밀집 지역’이 될 가능성에 우려를 표시했다. 기존 8기에다 추가로 6기가 건설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핵시설의 위험성이 퍼지면서 신규 터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기존 가동 지역인 고리·월성·울진을 건설지로 결정했다. 2008년과 2013년에 각각 폐쇄 예정이던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의 수명을 연장하는 등 기존 핵발전소의 가동연한도 늘릴 방침이다. 울진에 마지막 신규 터를 지정하고 나면 2030년까지 한국은 총 36기에 2732만kW 용량의 핵발전소가 가동될 것이다. 최대 용량, 최다 기수의 핵단지가 조성되는 셈이다.
정부는 ‘핵 밀집 지역’ 만들려 하는가
핵발전소의 안전성 문제 역시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2003년 2월에 가동한 영광 5·6호기 발전소가 지난 한해 동안 여러 번 고장난 데 이어 열전달 완충판이 이탈해 5천t의 액체방사능이 그대로 바다에 유출된 바 있다. 최근에는 영광 5·6호기와 같은 한국형 원자로인 울진의 핵발전소가 같은 원인으로 고장이 잇따랐다.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 그것도 부족해 자리를 옮겨 새벽을 넘기는 마라톤 회의 끝에 성과물이 나왔다. ‘(가칭)신규핵발전소 건설반대,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연대회의’(약칭 ‘주민연대회의’)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주민연대회의는 먼저 신고리 1·2호기 건설을 막아내는 데 힘을 모으기로 하고 8월 하순 울산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했다. 또 부산·울산 지역 주민들은 ‘건설중지가처분신청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추가 건설을 막아낸다’는 입장이며, 영광·울진은 ‘핵폐기장 문제의 해법도 신규 발전소 건립을 막는 데서 출발한다’며 연대 투쟁을 약속했다. 이들은 “5개 지역 주민들은 지역간의 정보 교환과 상호 연계를 통해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정부의 핵발전 정책에 맞서 싸우는 일에 매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지역 주민들은 침체한 반핵운동의 불씨를 다시 지피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반핵운동의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다.
지난 7월27일 울산행 열차 안에서 만난 박아무개씨는 필자에게 되물었다. 차창 밖 송전탑을 보며 “왜 이렇게 송전탑이 많이 보이는 거죠”라며 핵발전소 얘기를 꺼낸 게 발단이었다. 그의 말은 평균적인 한국인의 정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핵발전은 사양산업이다. 핵발전소 추가 건설은 동남아시아 몇개 나라에서만 진행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핵발전소를 늘리려는 곳은 한국과 일본뿐이다. 한국 정부는 1978년 최초의 핵발전소인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20여년 동안 핵발전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재생 가능 에너지 등 대안 마련은 등한시한 채 말이다.

핵발전소로 인해 20년 이상 고통받아온 핵발전소 주변 5개 지역 주민들. 상호 연계를 통해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정부의 핵발전 정책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