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전쟁이 답이 아니다 갑자기 떠오르는 심각한 질문 하나. 그 나라에는 국가원수 모독죄도 없나? 우리나라는 대통령을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밥줄이 끊기고 이유 없는 핍박을 받은 연예인이 있지 않았던가? 마이클 무어가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부시의 모습을 마구잡이로 편집해도 괜찮은 것은 물론이고 상까지 내리는 나라이고 보면, “역시 미국은 위대하다”(?).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노무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사사로운 이익이 개입된 모종의 미국과의 거래 때문에 그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동조한다는 시나리오를 기본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찍어서 희화한 <섭씨 9/11>을 만든다. 그 자식에 조카에 친인척 젊은 청년들을 이라크전에 내보내고 싶지 않음은 물론이다. 대신 힘없고 가방줄 짧고 돈 없는 부모를 둔 이 땅의 불쌍한 하층 계급의 청년들을 향해 외친다. “이라크에 파병하지 않으면 이 나라가 위험해질 수 있소. 당신들은 애국자요. 자, 다같이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들고 미국이 만드는 자유세계를 향해 전진합시다.” <화씨 9/11>에서는 우리에게 환상적으로만 그려지는 미국에도 역시 하층민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더러운 전쟁’에 투입되는 미군들은 말이 자원 입대지, 실상은 그들의 가난을 이용한 정부의 비열한 ‘핏값 거래’에 의한 반강제적인 입대이다. 전쟁광 부시에 의해 전장에 내몰려진 희생양으로, 언제 테러의 위협으로 목숨을 잃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그들의 입에서 “이 전쟁은 무의미한 것”이라는 말이 거침없이 흘러나온다. 결국 전쟁의 결정은, 전쟁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이 하는 것이고, 거기서 생기는 전리품은 그들만의 몫이 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틀리지 않는다. 전장에 내몰린 불쌍한 병사들은 전쟁과 무관한 피지배계급으로서 전쟁광의 수족이 되어 아무 생각 없이 총알받이가 된다는 계급적인 시각을 마이클 무어는 견지하고 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 500명이 넘는 미 의회 의원들을 일일이 붙잡고 마이클 무어는 소리친다, “의원님 자제분을 먼저 이라크전에 자원 입대시키시지요.” 뿌리치고 도망가는 의원들. 어쩜 대한민국은 이런 모습까지도 미국을 빼닮은 건가?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선택이니, 한-미 안보동맹을 고려한 국익 차원에서의 결정이니 떠들어대는 파병 찬성 국회의원 중 한 사람이라도 솔선수범해서 자기 자식이나 친인척을 이라크 전장에 내보내기로 결심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는가? 엊그제 내가 속한 단체에서 돌배기에서 70살이 넘은 어르신까지, 나이와 성별을 초월한 회원 한마당이 열렸다. 지난 봄, 미군 폭격장인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 농섬의 포탄 구덩이에서 포탄 파편을 들고 천진난만하게 놀던 나의 어린 딸은 해수욕장 바닷가에서 열린 파병 반대 집회가 마냥 신기한 모양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파병 반대’라고 촛불 글씨를 새기는 어린 딸을 바라보면서 한없는 울분과 자괴심에 애꿎은 별만 돌팔매를 당해야 했다. 결코 전쟁이 답이 아닌데, 이 어른들은 왜 전쟁에 그토록 광분하는가? 우리가 폭력을 사용하려는 유혹에 굴복한다면 우리 어린 딸과 아들,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다음 세대는 길고 어두운 고통스런 밤의 수혜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우리가 깨어 있지 않으면, 그래서 자기 배나 불리는 지도자를 뽑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아무 생각 없이 지배계급이 하라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처럼 행동한다면, 우리는 무의미하고 혼란한 세상을 미래에 물려주는 당대의 공범일 수밖에 없으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