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대안운동을 찾아서]
주택공사의 택지 개발에 저항하는 고양 시민들… “고봉산 습지에는 생태계가 숨쉬고 있다”
글 · 사진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고양 시민의 허파, 고봉산을 살려내자!” “고봉산 습지 1만3천평 보전하라!” 지난 6월23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일산2동 안곡초등학교 옆 ‘고봉산 보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의 컨테이너 사무실 주변에는 이런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나무 살리기에 나선 어린이들
컨테이너 옆으로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이 사포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고봉산 개발 과정에서 포클레인에 뽑혀 묻혀버린 주목나무 조각으로 휴대전화 고리나 나무목걸이를 만들기 위해서다. 김재환(13·낙민초)군은 “주택공사에서 베어낸 나무로 목걸이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고봉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주고 싶어요”라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고 있었다. 일산 낙민초등학교 학생들은 지난 2주 전 고봉산을 방문해 숲과 습지가 파괴될 위기에 놓여 있다는 걸 알고, 이를 또래 아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자체 소식지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날부터 매일매일 고봉산을 찾아서 숲이 파괴되는 모습이나 생태습지가 훼손되는 모습을 사진에 담기로 했다. 소식지를 만들자고 친구들에게 제안한 황혜진(13·낙민초)양은 “고봉산은 숲이 아름답고 다람쥐나 개구리가 많이 살고 있어요. 어른들도 자연보호를 배웠을 텐데 왜 자기 이익만을 챙기려고 하나요?”라고 말해 주변에 있던 어른들을 부끄럽게 했다.
대책위 김미영(38) 사무국장과 함께 오른 도봉산은 험하게 망가져 있었다. 산 중턱이 뭉턱 잘려서 시뻘건 흙더미가 보였고, 군데군데 뽑힌 나무들이 속살을 보이고 있었다. 고봉산의 남쪽 자락은 한쪽 사면이 완전히 날아가버린 채 산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다. 김 국장은 지난 5월18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택지 개발을 위한 310번 우회도로 공사계획 중단과 고봉산 보존을 요구하며 공사 현장에서 지역 주민들과 시민환경단체 회원들이 농성을 벌이는데, 주택공사가 용역업체를 동원해 강제로 해산하고 고봉산 자락의 나무를 베어내기 시작했다. 용역업체 사람들은 주민들을 땅바닥에 패대기치기도 하고, 사람들 옆으로 굴착기를 몰아 위협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나무들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만 보며, 한뼘 남은 자연마저 빼앗긴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단식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 영향으로 김 국장은 병원 통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과 대한주택공사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주택공사가 고양 일산2지구 택지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택지에 생태가치가 높은 지역이 포함돼 있어 공사를 강행하려는 주택공사와 시민환경단체들 사이의 긴장감은 날로 더해가고 있다. 지난해 9월30일 주택공사가 일산2지구(25만평·6100가구) 택지개발 사업을 착공하자 주민들과 시민환경단체들이 공사 현장에 컨테이너를 설치했다. 주민들은 “도심지 내 습지가 형성돼 있는 등 고봉산 자락 1만3천여평은 보존가치가 높기 때문에 생태학습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미 공사가 상당 부분 진척된 C-2는 벌목공사로 산림이 황폐해졌다. 주민들은 고봉산 남쪽 산자락 부근의 C-1을 보존해야 할 마지막 보루로 삼고 주택공사의 공사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갈대숲 500평을 비롯해 인근 지역 2천평을 보전지역으로 이미 지정한 주택공사는 대책위가 보존을 요구하는 1만3천여평 중 밤나무숲 4500평을 제외하고는 추가적인 보존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나머지 8500평에는 160평 부지의 단독주택 40채를 짓는다는 계획이다. 주민들은 “고봉산 남쪽 산자락에 있는 자연습지는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주택공사가 습지 500평을 보존한다고 하지만 1만3천평의 C-1 전역이 함께 보존되지 않는 한 습지는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주택공사의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습지는 ‘외딴섬’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봉산 습지의 갈대밭 중간에는 지하수가 만든 수렁이 있다. 원래는 이곳을 논으로 쓰려고 개간했는데 땅이 워낙 질다 보니 농사짓기가 어려워서 그냥 방치해놓은 곳이 습지로 변했다.
땅 사려해도 매도인 찾지 못해
주민들은 지난 2002년 5월 습지가 훼손될 위기에 놓이자 땅을 매입해 보존하려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김 국장은 “2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모은 돈이 3억원에 이를 정도로 호응이 높았다”며 “이를 계기로 주민들이 고봉산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봉산 남쪽 자락의 일부를 매입하려고 했으나 부지를 팔려는 사람을 찾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모금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무 팻말에 적혀 습지의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었다.
고혜수(43) 대표는 “이곳은 물이 있는 곳으로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그대로 살아 있는 소우주”라며 “습지에는 살모사와 무자치, 물장군, 물땅땅이, 뱁새, 꿩, 참새, 수생식물, 수서식물 등 그야말로 다양한 생물이 살아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택지 개발을 위한 310번 우회도로 공사가 진행되면서 다람쥐 등이 서식지를 잃고 컨테이너로 숨어드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지난 4일 대책위의 단식 농성장에 천연기념물 324호인 솔부엉이가 한쪽 날개가 부러지고 탈진한 상태로 떨어져 있다 발견되어 한국조류보호협회로 옮겨져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날 저녁 7시쯤 대책위 사무실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치료를 끝낸 솔부엉이를 자연으로 되돌리는 행사가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은 솔부엉이를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솔부엉이는 고봉산이 고향입니다. 자연의 고향이 없어지지 않도록 노력합시다”라는 고 대표의 외침에 솔부엉이는 힘차게 날갯짓을 했다. 솔부엉이는 고봉산 남쪽 산자락의 고목나무에 앉아 사람들을 한참 바라보더니 이내 자연으로 되돌아갔다.

김미영 고양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이 고봉산 앞자락에서 건설되고 있는 C-2 공사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 시뻘건 흙들로 뒤덮여 있었으며 일부에서는 지반을 다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