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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장애 영·유아 양육은 ‘천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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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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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부족한 조기교육·운동치료시설… 부모에게 씌우는 짐 너무 크다

(사진/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서울장애인복지관은 장애 영·유아를 위한 공립기관 가운데 시설 및 교육내용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기관이 턱없이 부족해 장애아 교육·치료는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서울 고덕동에 사는 경선(가명·생후 39개월)이는 ‘프라더윌리 증후군’(PWS: Prader-Willi Syndrome)이라는 희귀한 장애를 겪고 있다. 살이 많이 찌고 근육에 힘이 빠지며 학습부진을 일으키는 이 장애는 아버지쪽 15번째 염색체 가운데 일부가 떨어져나가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빚지고 산다고 체념하는 부모들

11월24일 오후 서울장애인복지관에서 만난 경선이 엄마 장아무개씨는 경선이가 겪고 있는 장애의 실체를 지난달에야 확인하게 된 사연을 털어놨다. “태어난 직후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여러 면에서 늦더라구요. 발달장애가 의심돼 생후 열달이 지나면서 서울에서 몇째가라면 서러워할 대학병원과 대형병원들만 골라 다녔지만 2년이 넘어도 장애이름조차 나오지 않았어요. 결국 이곳 의사 선생님이 장애이름을 확정해줘 이제 막 치료계획을 세우고 있죠.”


이 장애는 나이가 들수록 먹는 욕구를 참지 못해 소화를 못 시킬 정도로 먹으려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게다가 치료제가 항우울제인 ‘프로작’이나 성장호르몬 등으로 극히 제한돼 있는데다 완치를 장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장씨에게 더욱 절박한 것은 무엇보다 매일같이 부딪히는 경제적 부담이다. “복지관과 유치원 비용에다 사설기관에서 하는 언어치료나 물리치료 한 가지만 보태도 보통 한달에 30만∼50만원 정도가 들어갑니다. 아이를 돌보느라 맞벌이는 엄두도 못내니까 장애아를 둔 엄마들은 그냥 빚지고 산다고 체념한 이들도 많아요.”

같은 복지관에서 조기교육을 받고 있는 다은(생후 33개월)이 역시 영아성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겪고 있다. 다은이 엄마 김현숙(32)씨는 출생 직후부터 근육의 힘이 좋지 않은 딸의 모습에 의문을 품고 적극적으로 원인을 밝히려 한 결과 장애의 종류를 비교적 빨리 알아낸 편에 속한다.

“미세한 뇌출혈로 인해 뇌에 낭종이 뭉쳐 있고 전반적으로 뇌가 위축돼 있다”는 병원쪽의 정밀검사 결과를 통보받은 김씨는 하늘이 노래졌으나 금세 정신을 차렸다. 아이를 이대로 놔둘 수 없다고 생각한 김씨는 돌이 지나자마자 조기치료·교육기관을 찾아 헤맸다.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장애아 조기교육시설 탓에 김씨는 다은이가 12개월이 돼서야 이곳 복지관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것도 예정돼 있던 다른 아이가 포기한 자리를 물려받는 ‘행운’이 없었더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은이는 현재 복지관에서 받는 전반적인 조기교육과 심리운동치료 외에도 수영교육, 그리고 종합병원 재활의학과에서 작업치료(장애아의 행동을 의미있는 활동이 되도록 도와줌으로써 장애아 스스로 환경에 적응하도록 지도하는 것)와 언어치료를 받고 있다. 언어치료는 30분에 3만원씩, 작업치료는 1만5천원씩 낸다. 조기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한달에 50만원 안팎이다. 다은이 말고도 언니와 오빠에게 들어가야 할 교육비용까지 대느라 김씨는 “허리가 휘어질 지경”이라고 말했다.

유치원비 감면은 불가능한가

김씨는 다은이를 정성껏 교육하기 위해 남편의 도움없이 스스로 운영하던 서점도 그만둬야 했다. 그러다보니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김씨가 정작 가장 안타까워하는 점은 영·유아의 장애를 조기에 발견해 치료·교육하는 시스템이 거의 갖춰지지 않은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확인했다는 사실이다.

“아이를 낳은 산부인과에서는 전혀 얘기가 없었고 소아과를 찾아가도 ‘원래 좀 늦는 아이들이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한가한 얘기만 했어요. 재활의학과에서도 기다렸다가 물리치료를 받아보라는 식으로 막연한 얘기를 반복했구요. 장애인 신청을 받는 동사무소 창구직원은 ‘이런 애를 왜 장애인으로 만들려고 하냐’는 상식 이하의 질문만 하고…. 결국 가장 절박한 엄마들이 직접 나서서 정보를 직접 챙기다보니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거죠.”

딸 성화(4)를 조기교육시키고 있는 박경희(29)씨는 태어날 때부터 얼굴 형태가 독특한 다운증후군의 특징 덕분에 장애를 금방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산부인과 의사가 얼마 살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 조기교육과 치료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아직까지 섭섭한 마음을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유치원비라도 감면해주면 좋을 텐데…. 구립 유치원의 경우에는 장애가 없는 아이들보다 8만원 더 많이 받으면서 장애아를 위한 특별한 교육시설도 없어요. 지내다보면 어이가 없을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성화가 지금 다니는 유치원은 사설인데도 구립 유치원보다 비용도 싸고 아이에게 관심도 많이 기울이고 있어요. 장애아와 비장애아를 한꺼번에 교육시키는 통합교육을 시키고 있는데 별 문제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또래보다 발달이 늦어지는 영·유아들의 장애를 가리켜 ‘발달지연’ 또는 ‘발달장애’라고 부른다. 더 세부적으로는 다운증후군과 같은 각종 증후군, 뇌성마비, 자폐 등으로 나뉜다. 이들은 비장애아들에 비해 운동·인지·언어·사회성 등 4개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능력을 보인다.

발달지연이나 발달장애로 인해 특수교육을 받아야 하는 장애아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정확한 공식 통계자료가 없다. 교육부는 내년에 처음으로 장애아동의 수를 전국적으로 파악할 계획을 세우고 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만 6살 이하 장애 영·유아들이 장애를 얼마나 극복할 수 있는지는 생후 몇 개월부터 조기 특수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뇌를 비롯한 신체의 각 기관이 미완성인 상태로 급격히 발달하는 만 3살까지는 반드시 조기치료와 교육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 강동구로 장애아 가족이 모이는 이유

(사진/장애아와 비장애아가 함께 운동회를 하고 있는 모습.통합교육을 위해서도 조기교육은 필요하다)
정보인 연세대 교수(재활의학)는 “성인 지능의 50%는 4살 이전에, 80%는 6살 이전에 발달한다는 학설이 나올 정도로 영·유아의 두뇌발달은 취학 전에 진행된다”며 “동작이나 언어·사회성 등이 확실히 굳어지지 않았을 때 하루 4∼5시간씩 집중적으로 교육해야 특히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장애 영·유아 조기교육의 걸림돌은 무엇보다 국가나 사회가 공적으로 부담하는 부분이 너무 적은 반면 부모들에게 씌우는 짐이 너무 크다는 데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장애아 한명당 조기교육에 쓰이는 평균 비용은 공립기관의 경우 56만2천∼69만5천원, 사설기관의 경우 92만5천∼117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조).

지역마다 ‘∼복지관’이라는 이름으로 설치돼 있는 공립기관들의 경우 교육을 받으려는 장애아에 비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인원은 지나치게 한정돼 있다. 시설의 수준과 교육자들의 자질면에서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서울장애인복지관은 조기교육을 받기 위한 대기자들이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2년까지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일단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 오래 기다려온 대기자들과의 형평성 때문에 전체 교육기간이 만 2년 이상을 넘길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서울지역에서는 비교적 깨끗하고 전문적인 장애인 복지시설이 밀집돼 있는 강동구로 장애아를 둔 가족들이 이사와 모여사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장애아 전문단체나 기관이 턱없이 부족한 지방에서는 서울로 이사오지도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는 가족들도 많다.

정부는 1994년 특수교육진흥법을 제정하면서 각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3살 이상 장애아들에 대한 무상교육을 명문화했다. 이에 따라 장애아들이 공립기관을 다닐 경우 입학금, 수업료, 교과서 구입비 등은 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장애인단체들에 따르면 현재 이 혜택을 받고 있는 장애아는 1천413명에 불과해 혜택을 받는 비율이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공립기관에 대한 국가예산이 충분하지 못하다보니 말로는 무상교육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명목의 다양한 비용이 고스란히 들어가고 있다. 부모들이 원하는 운동·인지·언어 등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한곳에서 받지 못하는 한계도 드러내고 있다. 이 때문에 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빚을 내서라도 사설기관과 재활센터 등이 있는 병원을 찾아다니고 있다. 사설기관들은 정부의 인가를 받지 않고 설립돼 신뢰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전문가들도 많다.

“우리 사회의 책임은 없을까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수미 간사는 “현행 법체계로는 조기교육이 가장 필요한 3살 미만의 장애 영·유아들에 대한 무상교육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관련 법규를 고쳐서라도 이같은 문제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조기교육을 통해 장애를 조기에 극복하는 것은 조기교육을 받지 않았을 경우 사회 전체가 미래에 떠안아야 할 더많은 부담을 미리 해소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덧붙였다.

장애 영·유아의 조기교육과 관련한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부처가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로 이원화돼 있는 것도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또 의료 영역에서도 이 분야가 소아과인지, 재활의학과인지, 소아정신과인지가 명확하게 확립돼 있지 않은 형편이다. 이 때문에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길을 몰라 헤매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도 장애의 조기발견을 활성화하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보인 교수는 “선진국처럼 태어난 직후 3살 이전까지 정기적으로 아이의 발달정도를 체크하는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장애아 엄마의 고백은 이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얼마 전 신문에서 자폐아를 끝내 제손으로 숨지게 한 어머니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전에도 장애아를 자기 손으로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부모들을 종종 봐왔습니다. 모든 책임을 엄마나 아빠의 몫으로 돌리는 우리 사회의 책임은 없는지 곱씹어봐야 합니다.”


인터뷰/ 서울장애인복지관 이미경 박사

“소아과 조기진단 시스템 구축돼야”

1988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장애인복지관에 재직중인 이미경 박사(재활의학)는 “아이에게 장애로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나면 지체없이 전문가들의 조언과 함께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며 “원래부터 늦게 발달하는 아이들이 있게 마련이라고 말하는 주변의 조언을 무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아에게 좀더 나은 치료와 조기교육의 혜택을 누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조기발견이 가장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아이들을 전담하는 소아과에서 아이들의 장애를 좀더 빨리 발견할 수 있는 전문성과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조기발견과 진단이 제대로 이뤄져야 아이의 발달정도에 맞는 교육방식과 내용이 마련될 수 있다. 장애아와 비장애아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교육시키는 이른바 ‘통합교육’이라는 것도 모든 장애아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장애정도에 따라 개별지도 방식을 쓸지, 통합교육 방식을 쓸지 여부가 결정된다.

-조기발견을 위해 부모가 알아두어야 할 점은.

=먼저 가족에게 유전질환이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애를 낳기 전에 유전상담을 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임신중에 임신중독증을 앓았거나 조산아·저체중아를 낳았다면 장애 여부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출산한 뒤에도 아이가 유난히 보채거나, 근육이 너무 늘어지거나, 너무 먹는 것을 밝히면 의심해봐야 한다. 빠는 힘이 약하거나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어도 장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출생 직후 선천성 대사질환 검사와 근육 이상 여부를 알아보는 정밀검사는 필수적이다.

-조기발견과 조기치료가 특별히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통 만 5살 미만의 아이들은 장애아이든 비장애아이든 발달이 끝나지 않은 미완성 상태의 생명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외부자극에 의한 발달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것이다. 신경생리학적으로 볼 때도 조기발견과 치료는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김창석 기자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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