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 대통령선거에 대한 언론의 보도 그리고 사람들의 그것에 대한 아전인수격 반응은 참으로 놀랍다. 뽐내기 좋아하던 미국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만천하에 벌거벗겨진 것에 대해 “깨소금이다”라고 반응하는 것은 그동안의 열등 콤플렉스나 미국이 취해온 패권적 외교정책에 대한 반감을 감안해 그렇다 치자. “거기에도 선거부정이 있네”라는 식의 카타르시스적 자기 안심 강화논리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주변의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미국이 망할 징조다”, “미국이 드디어 진보와 보수의 국론분열이라는 심각한 암초에 걸렸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식의 반응을 내비칠 때마다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공부’는 ‘우리 공부’ 여기서 미국 정치에 대해 이론적 논의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그런 유례없는 혼란과 당파적 대립의 와중에서 미국 대통령이 외유를 가고(물론 한국 대통령도 그 점에서는 훌륭하다) 국지적인 소규모 시위와 치열한 법적 공방만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명한 인권운동가이며 민주당 지도자인 제시 잭슨 목사의 플로리다주 ‘출동’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몇천명 규모를 넘지 못했다. 안전 수위를 넘고 있는 당파적 설전도 결국은 법원 판결로 승패가 가려질 뿐이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별로 관심이 없거나 지겨워할 뿐이다. 극단적인 가정을 해서, 심지어 유혈사태가 빚어지고 더 큰 혼란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미국사회는 전혀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법치주의 문화나 제도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고 정치적 당파성이 맹목적 자아도취에만 매몰되지 않는 객관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60년대에서 70년대 중반까지 치명적 위기를 경험하고 그것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회다. 민족적 나르시시즘은 여전히 미국문화와 정치를 제대로 읽지 못하게 한다. 우리의 선입관에 맞춰 그곳의 현실을 단순화하고 ‘우리 식’으로 해석한다. ‘우리’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려는 모든 노력은 미리 정해진 ‘우리의 관점’에 어긋나는 수많은 사실을 외면하게 하며 동시에 ‘우리의 입맛’에 맞는 사실만을 확대 강조하게 만든다. 이게 정말 위험한 것은 객관적 ‘사실’에 부딪힐 때 그 충격만큼의 반작용과 자기비하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민족적 자아도취에 기초한 반미감정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사대주의적 친미와 부당한 한-미관계로부터의 해방이 시작된다. 미국 공부는 사실은 ‘우리’를 공부하는 문제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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