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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정조와 광개토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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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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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은 잘 알다시피 여러 분야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기회가 있으면 그 해박함을 너무 과시하는 것이 오히려 흠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독서량이 많다는 데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역사분야에도 나름의 일가견을 갖고 있는데, 김 대통령이 그동안 우리나라 역대 왕 중 언급한 사람은 단 두명으로 기억합니다. 그 하나는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正祖)이고, 다른 한 사람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입니다. 거기에 덧붙인다면 최근에 광해군의 외교능력을 높이 평가한 적이 있지요.

지난 95년 초 1월께, 그러니까 김 대통령이 정계복귀를 하기 전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으로 와신상담하던 시절, 측근들과 함께 영화 <영원한 제국>을 관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그는 정조에 대한 나름대로의 식견을 표시했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조선시대 임금 중 정조야말로 가장 개혁적인 임금이었는데 개혁이 좌절되고 말아서 안타깝다는 요지였습니다. 그리고 정조의 개혁이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광개토대왕에 대해 언급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어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97년 대선 과정에서 나온 이른바 ‘신광개토대왕론’입니다. “우리는 광개토대왕 시대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과거 광개토대왕 시대가 국토를 확장시켰다면 지금 우리 민족에게는 세계 속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이룩할 수 있는 새로운 광개토대왕 시대가 필요하다”는 것이 대략의 요지였습니다.

정조와 광개토대왕. 그 속에는 국가지도자로서의 김 대통령의 꿈과 희망이 투영됐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특히 정조를 이야기할 때는 그가 92년 대선 패배 뒤 정계를 은퇴한 상태에서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좌절한 정조가 아니라 성공한 정조가 되고 싶고 또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바로 정조의 개혁론으로 나타났지 않았나 싶습니다.

잘 알다시피 정조는 기울어져가는 조선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애를 썼으나 결국 좌절하고 맙니다. 할아버지인 영조 때부터 추진해오던 탕평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치고, 척신들의 세도정치를 뿌리뽑기 위해 자신의 친위세력이던 홍국영까지도 축출했습니다. 또한 국왕의 정책자문기구로서 규장각의 기능을 강화해 진보적 인물들을 끌어모았고, 심화될 대로 심화된 지주-소작제도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전국의 선비들에게서 토지개혁방안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런 혁신정책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좌절되고 맙니다.

정조와 광개토대왕. 그가 계승과 극복을 이야기했던 두 임금 중 김 대통령은 지금 이 순간 누구에 가까울까요. 광개토왕에 가깝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민족의 호쾌한 웅비를 이야기하기에는 현재의 모습이 너무 초라합니다. 개혁과 좌절이라는 면에서는 오히려 정조에 가까울 듯하지만 냉정히 말한다면 정조와도 거리가 멀게 보입니다. 정조는 지금으로 따지면 엄청난 시대적 제약과 한계 속에서도 개혁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안간힘을 쓰다가 쓰러졌습니다. 심지어 반대파인 노론(老論)세력에 의한 독살론까지 제기될 정도입니다. 인재를 널리 구하는 탕평책의 정신이나 진보세력의 규합, 개혁정신의 치열함에서 김 대통령은 오히려 한수 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조도 아니고 그렇다고 광개토왕도 아닌 어정쩡한 지도자로 끝날 것 같은 비극적 예감, 그것이 김 대통령의 처한 현재의 모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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