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대안운동을 찾아서]
대형 할인매장에 밀려 사라지는 구멍가게 · 재래시장… 대전 시민들이 중소 상인 살리기에 나서다
대전= 글 · 사진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뉴욕의 명물 ‘길모퉁이 서점’은 수십년째 이어져 내려온 아동 전문 서점이다. 어느 날 길 건너편에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이 들어서면서 이 서점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사연을 전해들은 뉴욕 시민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들은 “대형 서점 때문에 고사 위기에 처한 ‘길모퉁이 서점’을 살리자”고 외쳤다. 하지만 결국 ‘길모퉁이 서점’은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고 만다. 영화 <유브 갓 메일>에 나오는 내용이다. 영화 <유브 갓 메일>을 본 사람들은 이 영화에 대해 단순히 인터넷을 통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로 기억하기 쉽지만, 이는 세계화에 맞서 싸우는 지역 시민들의 이야기다.
중앙시장은 ‘고객지원센터’ 마련
먼 나라의 영화 속 이야기는 이제 한국에서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형 할인매장이나 기업형 편의점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동네 어귀의 정겨운 구멍가게와 재래시장 점포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깔끔한 매장, 저렴한 가격, 첨단 마케팅 기법,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로 무장한 대형 할인매장과 기업형 프랜차이즈가 ‘지역 밀착형 업종’을 흡수하면서 재래시장과 구멍가게들을 고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은 이런 거대 자본의 횡포를 그냥 보고만 있지 않는 곳이다. 대전역 인근의 중앙시장은 세계화에 대한 저항의 중심지다. 이곳은 대통령 선거 등 주요 정치적 행사 때마다 정치인들의 민생 챙기기 ‘단골 코스’로도 유명하다. 1953년 무렵부터 형성되기 시작해 80년대까지 충청과 영·호남의 중심 상권을 이루며 대전 경제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지난 2000년부터 대형 자본에 밀려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6월8일 오후 중앙시장의 거리는 한산했다. 몇몇 지나가는 행인이 있었지만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20년 아니,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북적거렸지! 서로 어깨가 부딪혀서 지나다니기가 불편했을 정도니까.” “미끈하게 생긴 쇼핑센터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여기는 그런 사람들이 오기나 하나….”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헌책방을 비롯해 여러 가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길을 따라 홍명상가 앞에 자리잡은 ‘고객지원센터’를 찾았다. 이곳은 지난 2월 중앙시장의 사후 고객 서비스 강화를 위해 문을 열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고객지원센터는 중앙시장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발길을 잡기 위한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 있다. 고객지원센터 1층에는 중앙시장에서 구입한 물품을 임시 보관할 수 있는 물품보관소가 40개 설치돼 있고, 안내데스크에서는 중앙시장의 이용방법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주고 있다. 2층은 강매, 반품 거절 같은 불친절 사례를 없애기 위한 소비자보호센터가 들어서 있다. 특히 고객지원센터는 상인들의 판매 노하우, 번영회 활성화 같은 문제를 서로 공유하고 마케팅 교육과 정보 제공, 선진 유통기법 교육 같은 재래시장의 자생력을 높이는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설립된 ‘동네경제 살리기 추진협의회’(이하 동네경제 살리기)는 다국적 대형 할인점과 대기업 유통업체에 밀려 갈수록 설자리를 잃고 있는 구멍가게와 재래시장을 되살리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대전 경실련이 중심이 돼 활동하는 이 운동은 슈퍼연합회, 재래시장번영회, 상가번영회와 전문가 및 일반 시민들이 함께 참여해 지역 밀착형 시민운동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최근 대형 할인점의 24시간 영업이 잇따르면서 지역경제의 ‘뿌리’를 자처해온 동네 구멍가게들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둔산동의 삼성 홈플러스가 24시간 영업을 전격 선언하자, 경쟁업체인 이마트 둔산점도 4월부터 24시간 영업을 결정했다. 곧이어 대전지역 17개 대형 할인점도 영업 연장을 고려하고 있어 동네 수퍼를 포함한 중소 유통 상인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동네경제 살리기는 지난 5월28일 대전시 둔산동 삼성 홈플러스에서 ‘대형 유통점 영업시간 연장 규탄대회’를 열었다. “대형 유통업체의 영업시간 연장은 지역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동네경제를 외면한 대자본의 횡포”라며 “독일의 경우 대형 유통점과 지역 중소영세 상인의 공존을 위해 대형 유통점의 영업시간을 규제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다국적 자본이 동네경제를 죽이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대형 유통점 영업 시간 규제를 외치다
하지만 동네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상인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언제까지 지역 시민들의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네경제 살리기는 가칭 ‘상인대학’을 열어 최신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지역경제 살리기에 앞장서온 상인들의 자긍심을 불어넣는 방안도 찾고 있다고 한다. 송행선(54) 동네경제 살리기 공동대표는 “구멍가게나 재래시장의 특성과 고유의 이미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활성화를 찾아야 한다”며 “지역의 문화와 환경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송 대표는 “무엇보다 슈퍼마켓이나 재래시장에서 젊은 사람들이 장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래시장에 젊은이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 상품이 없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대책이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지난 2월 초 “2010년 무렵이 되면 독일에서 아예 구멍가게를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라며 거대 유통자본의 횡포를 고발했다. 대형 유통업체의 횡포를 막지 못한다면 이런 예상이 한국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거대 자본의 독주를 막지 못하면 인간 중심의 민주적 시장경제의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대전의 ‘동네경제 살리기 운동’을 주목하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동네경제 살리기 추진협의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 왼쪽부터 최영만 대전시 동구청 경제진흥과 재활시장육상팀, 송행선 동네경제 살리기 공동대표, 김현숙 간사, 김주홍 사무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