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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장애인의 몸짓은 아름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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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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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폼나게!” 굵고 무서운 목소리는 팔이 굽고 다리를 못 펴는 마네킹들을 자꾸 수직으로 세우도록 한다. 마네킹을 손보던 바른이와 곧은이는 목소리에 기겁을 해 서둘지만 잘되지 않는다. 얼추 비슷하게 세우자 불호령이 떨어진다. “불량!”

바른이는 일일이 수선하려 하지만, 곧은이는 장애 마네킹들을 흰천으로 씌어 묶어놓은 채 나간다. 기계부품처럼 억지로 모습을 바꿔야 하는 삐딱이와 싱글이, 동글이 자매 마네킹은 드디어 분통을 터뜨린다. 이들이 의인화하는 순간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삐딱이는 멋지게 춤추고 노래부를 줄 알고, 싱글이는 바른이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동글이 자매는 툭하면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리는 장난꾸러기이다.

11월24일 서울 광진구 정립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몸짓 하나, 나는 나>(박인혜 극본·이정미 연출)는 장애여성인권센터(대표 김미연)가 만든 극단 끼판의 창단공연이다. 끼판은 장애여성들이 비장애인 중심의 문화에 적극적으로 ‘끼어들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판을 벌이는’ 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래서 비장애인 중심 사회의 현실을 진지하고 발랄하게 풍자하는 첫 공연으로 막을 올렸다. 비록 완벽하고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소박하고 뜨거운 연기를 펼친 이미경(32·자원상담가)·용태숙(31·영어관리교사)·김지혜(23·장신대 3년)·강은진(21·한양대 2년)<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씨는 지난 8월 오디션을 통과해 연극에 첫발을 디딘 아마추어 배우들이다.

모두 장애여성들인 이들은 석달가량의 연습기간 동안 몸무게가 3∼5kg씩 빠질 정도로 구슬땀을 흘리며 공연에 몰두해 왔다. 평범한 삶을 살아오던 이들이 배우로 변신한 이유는 “자신의 장애를 정면으로 보고”(용태숙), “그런 자신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싶어서”(이미경)였다. 곧게 서기만을 강요하는 목소리에 따르지 않는 이들의 몸짓은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규격화된 외형만을 강요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이들이 입을 모아 외치는 대사는 “내 모습 눈부시도록 충분히 아름다워”.

굳이 이 대사가 아니라도 그들의 몸짓은 충분히 빛나고 아름다웠다. 장애가, 장애를 끌어안는 태도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성숙하고 풍부하게 하는지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몸짓이기도 하다. <몸짓 하나, 나는 나>는 장애복지시설이나 단체의 요청이 있을 때 현장을 직접 찾아가 공연할 예정이다(문의: 02-831-9336).

김소희 기자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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