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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사고, 그 뒤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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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5-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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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대학 실험실의 위험한 환경에 대해 일반인들이 경각심을 가지게 된 데는, 1999년 9월18일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실험실에서 일어난 폭발사고가 중요한 계기가 됐다. 알루미늄 분말을 이용해 폭발물을 제작하고 있던 실험실에서 일어난 ‘원인 모를’ 폭발에 의해 학생 3명이 목숨을 잃고 외부 보조 연구원 1명이 2도 화상을 입은 것이다. 사고가 일어난 뒤 서울대 공대 신문사를 중심으로 실험실 안전 대책위가 꾸려졌고 대책위는 1년 가까이 자체 진상 조사를 비롯해 공대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 등 학생들 차원에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대도 ‘공과대학 실험실 안전관리 규정’을 마련하고 교수들로 구성된 ‘안전관리 위원회’를 두었으며 모든 실험실 출입자는 교내 환경안전연구원에서 실시하는 안전교육을 받도록 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학교는 ‘안전’해졌을까? 당시 대책위 위원장을 맡은 노윤호(29·LG화학 기술연구원)씨는 “실질적으로 바뀐 것은 없었다”고 말한다.

“사고 뒤에 학교쪽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사고와 관련해 처벌을 받지 않았고 총장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학교 예산으로 공식적인 보상을 하게 되면 이는 학교가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숨진 학생들에게는 교직원들이 낸 성금이 돌아갔습니다.” 당시 유가족에게 각각 3억원씩 지급됐는데 이 중 1억원은 학교에서 전체적으로 가입한 학교경영자배상책임보험에서 나온 보험금이었고, 나머지 2억원은 교수와 직원들의 호주머니에서 갹출한 위로금이었다.

“기본적으로 학교쪽의 태도는 ‘모든 실험은 위험하다’ ‘실험자가 잘해야 한다’ ‘운이 나빴다’는 식이었습니다. 체계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자 ‘예산이 없다’는 답만이 돌아왔습니다.” 노씨는 별다른 강제력이 없는 위원회를 만들고 형식적인 지침을 만드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공계 대학원생 중 아무나 붙잡고 사고에 대해 얘기해달라고 하면 누구나 2시간쯤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고가 빈번히 일어납니다. 각종 화재·폭발·가스누출 등으로 가벼운 화상은 물론이고 팔·다리의 골절도 자주 경험합니다.” 사고 뒤 대책위가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 295명 가운데 146명이 자신의 실험실에서 사고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65%의 학생이 안전교육이 미흡하다고 했으며, 50%는 실험실에 필요한 안전지식을 선배나 동료들로부터 개별적으로 배운다고 응답했다.

노씨는 대부분 대학원생들이 실험결과를 빨리 내려는 조급함 때문에 안전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데다, 대학원 총학생회 같은 대표기구가 없어서 학생들의 불만을 응집할 장치도 없다고 지적했다. “교수의 눈 밖에 나면 실험실 생활이 너무나 고단해지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일들을 털어놓을 수도 없습니다. 재료공학과 학생인 제가 원자핵공학과에서 벌어진 사고와 관련해 대책위 위원장을 맡은 것도, 제 지도교수가 상대적으로 학생들의 활동에 신경을 안 쓰는 ‘방임형’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지요.”


그는 실험실의 물리적 환경·시설과 안전전담 부서의 설치, 안전교육과 점검 등을 강제하는 법이 만들어져 의무적으로 이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 우리나라 상황에서 가장 긴요하고도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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