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몇해 전, 평소 잘 아는 군 고위관계자가 사석에서 남북통일 이후 국방전략에 관한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는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고, 통일이 되면 현재 남과 북이 보유하고 있는 병력을 대폭 감축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것으로 얘기를 시작했다. 무기체계도 그동안 남은 북을, 북은 남을 겨냥해왔으나 중국과 러시아, 일본의 군사력에 대응할 수 있도록 보완해나가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통일 이후 남북이 유지해야 하는 병력 규모를 구체적인 숫자를 들어가며 설명했고, 새로 도입해야 할 무기 이름들을 열거하기도 했다. 심지어 통합군 사령부가 위치할 곳은 어디이며, 통합군 산하 남부군 사령부와 북부군 사령부는 어느 정도의 규모로 어느 지역에 두게 될지에 대해 설명할 때는 ‘특종’에 대한 흥분으로 숨이 멎는 듯했다. 그는 또 이런 전략이 일정 규모의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한다는 것을 전제로 짜였으며, 미군의 주둔 규모에 따라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얘기를 마치면서 그는 “통일 이후 국방전략은 이미 비밀문서에 해당하는 문건으로 분류돼 있을 정도로, 우리 군도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군을 담당하던 기자로서, 그의 경력 등을 감안할 때 그 내용은 사실로 믿을 만한 근거가 있었고 보도 가치 또한 충분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그가 막판에 ‘오프 더 레코드’를 요청하는 바람에 특종은 불발에 그치고 지금까지 머릿속에만 담아두고 있다. 남북통일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확인한 것에 만족하면서….
최근 미군이 한국에 주둔 중인 미2사단 병력 일부를 이라크로 이동시키겠다고 발표하자 한반도 안보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라크 전황에 따라 미군의 추가 차출이 이어질 수도 있고 이라크로 간 미군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후속 보도까지 이어지면서 불안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때마침 법원으로부터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 나오자 “미군은 떠나고 우리 군인은 줄어들어 안보 공백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얼토당토않은 비약까지 등장해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재기 같은 혼란스런 모습이 자취를 감춘 것은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우리 사회가 점차 성숙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6·15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의 진전이 가져온 성과일 것이다. 이제라도 국방부가 ‘통일 이후 국방 전략’과 같은 중장기 국방계획을 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설명한다면 어느 정도 걱정을 덜어주지 않을까 싶다. 미군 1개 여단 감축에 흔들릴 우리 군이 아니라는 자신감을 보여주면 좋겠다.
어쨌든 그 모든 걱정과 불안의 원인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라크 침공 이후 1년여 동안 전쟁과 공포, 저항, 보복, 테러, 납치, 감금, 인질, 포로 학대 등의 살벌한 용어가 지구촌을 뒤덮으면서 우리도 정서적 안정감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은 이라크 전쟁의 와중에 들려온 달콤한 뉴스임이 분명하다.

사진/ 한겨레21
어쨌든 그 모든 걱정과 불안의 원인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라크 침공 이후 1년여 동안 전쟁과 공포, 저항, 보복, 테러, 납치, 감금, 인질, 포로 학대 등의 살벌한 용어가 지구촌을 뒤덮으면서 우리도 정서적 안정감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은 이라크 전쟁의 와중에 들려온 달콤한 뉴스임이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