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문학
중국이 개혁개방의 길을 간 지 20년이 넘었고, 그동안 중국은 성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면모를 완전 일신하였다. 그러는 동안 중국 밖에서는 중국 위기론, 중국 붕괴론이 거의 주기적으로 등장했다. 톈안먼 사태가 났을 때, 덩샤오핑이 죽었을 때는 중국이 금방이라도 지상에서 사라질 것 같았다. 객관적인 예측이기도 했지만, 중국을 뿌리 깊이 적대시하고 불신하는 서구 사회의 하나의 기대사항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숱한 예언과 블랙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붕괴되거나 해체되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이 세계 경제대국으로 떠오르는 지금 서구 사회에서 또다시 중국 위기론, 중국 붕괴론이 등장하고 있다. 중국이 아직까지 붕괴되지 않은 것은 중국의 능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라는 중화주의적 진단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세계가 중국에서 일어나는 위기를 과장하여 받아들이고 중국 붕괴론으로 연결해가는 과정의 배후에는 경제적 차원을 넘는 정치적 차원, 궁극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냉전적 차원의 불신과 몰이해가 놓여 있다는 것, 이를 극복하지 않는 한 과거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탈바꿈한 중국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중국에 올바로 대처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냉전 이후 우리의 중국관은 주로 미국의 영향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서구 사회의 그것과 일치한다. 그러한 냉전적 시각 속에서 중국은 근본적으로 문제아, 불량아이다. 일례로 과거 우리나라 중국 관련 연구소들은 거의 문제아로서의 중국을 연구하는 중국 ‘문제’ 연구소가 아니었던가. 그 문제아가 지금은 모범생 같지만 언제 사고를 낼지 여전히 불안하고, 미덥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이 진짜로 모범생으로 변신하여 세계 일등 국가가 되는 것을 세계적으로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구 사회에서 주기적으로 생산되는 중국 붕괴론의 뿌리는 여기에 닿아 있다. 실사구시적인 중국관이 필요하다 한국인들의 중국관은 극단적인 이미지 사이를 오간다. 대국과 낙후국이라는 극단적 이미지가 그것이다. 대국의 이미지가 전통적인 것이라면 낙후국의 이미지는 냉전 이후 형성된 것이다. 한국인의 중국 이미지는 늘 이 둘 사이에서 춤을 춘다. 다른 서구 세계야 어떻든 중국이 이미 우리 삶의 중심으로 육박해오고, 동아시아 구도 속에서 어차피 중국과 함께 살 수밖에 없다면, 이제 이 극단의 중국관을 넘어서는 일이, 중국이 망할 것이냐 망하지 않을 것이냐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실사구시적인 중국관이 필요하다. 중국은 빠르게, 크게 변하였다. 공자 시대의 중국도, 문화대혁명 시기의 중국도 아니다. 그러나 중국을 보는 우리의 눈, 우리의 사고틀은 변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여전히 장님인 채로 중국이란 거대한 코끼리를 만지는 한, 차이나 쇼크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 결과가 두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