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환자와 보호자들을 보살피는 호스피스 자원봉사 체험. 호스피스 병동은 ‘죽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 ‘행복한 죽음’을 위해 모두가 손을 잡는 곳이다. |
글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덜 용서받은 자는 덜 사랑한다.” 이 인상적인 문구가 걸려 있는 계단을 지나면 흰색 대신 연두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진 병동 복도와 마주친다. 아늑한 느낌을 주는 복도는 암과의 싸움이 아니라 화해를 이야기하고 있다. 6개 남짓한 병실마다 피부와 뼈밖에 남지 않은, 혹은 온 얼굴이 청동빛으로 변한 환자들이 안식을 구하고 있다. 이 병동의 주인은 침묵이다. 이따금 산소호흡기 소리나 구토 소리, 작은 흐느낌 등이 흘러나온다. 서울 청량리 성바오로 병원 7층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서면, 우리는 모두 겸손해진다.
3월24일- 고통은 마음이 결정한다 “보이는 것만 해주지 말고 환자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자원봉사 담당 벨다(49) 수녀는 말했다. 그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자신없는 일이었다. 내가 맡은 환자는 24살의 이현정씨와 42살의 김화숙(가명)씨였다. 이현정씨는 대장암이 난소와 췌장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뼈만 남은 몸이지만 고등학생으로 착각할 만큼 해맑고 예쁜 얼굴이었다. 통증이 심해서 모르핀을 맞고 하루 종일 잠 속에 빠져 있었다. 가끔 깨면 어머니를 붙잡고 흐느꼈다. 그는, 겨우 스물넷이다. 김화숙씨는 위암이 복강 내로 전이돼 장기마다 암덩어리로 가득 차 있었다. 병실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음료수를 꼭꼭 챙겨줄 만큼 상냥한 성격이지만 매우 불안해하고 있었다. 김씨가 쉴 새 없이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할 때마다 나는 그를 부축했다. 고통은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찾아온다. 따라서 호스피스는 통증과 마음을 함께 보살핀다. 김씨의 불안은 외로움이 만든 것이다.김씨는 2년 전, 재혼한 지 6개월 만에 암을 발견했다. 현재의 남편과도 사이가 멀어져서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착한 아들이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김민정(53) 병동과장은 환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늘나라는 정말 좋은 곳이지만 가기 힘들어요. 마음을 굳게 먹어야 됩니다. 우리에게 그걸 보여주세요.” 그러나 김씨는 아직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줄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 퀴블러 로스는 임종에 가까운 환자의 죽음에 대한 반응을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으로 분류했다. 김씨는 아직 수용 단계에 이르지 못한 듯 보인다. 오후에 김씨를 휠체어에 태워 병동과장실로 데려갔다. 과장이 “가족과 사이는 어때요?”라고 묻자 김씨는 “별로 안 좋아요”라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 과장은 휴지를 꺼내 그의 마른 손에 쥐어주었다.



김씨는 얼마 전 그가 마지막으로 용서를 받고 구할 대상, 전남편을 불러달라고 했다. 오후에 마침내 전남편이 찾아왔다. 아들이 자꾸만 정신을 놓으려 하는 김씨를 안고 “엄마, 아빠 왔어. 보여?”라고 물었다. 김씨는 전남편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용서의 제의가 끝났다. 임종 24~48시간 전에 환자는 극심한 불안과 함께 식은땀, 열, 가래 등의 신체적 변화가 온다고 한다. 김씨는 편안한 임종을 위해 안정제를 맞았다. 침상에 커튼이 쳐지고, 그 커튼 사이로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렸다. 상냥하고, 멋쟁이이며, 운동을 좋아했던 김화숙씨는 사흘 뒤 세상을 떠났다.
4월6일- 환자들의 위대한 가르침 자원봉사자들은 병실을 찾을 때마다 극과 극을 오가는 환자의 상태에 놀라곤 한다. 현정씨는 집에 다녀온 뒤 상태가 갑자기 좋아졌다. 사진기자가 들러 호스피스팀과 현정씨의 사진을 찍었다. 포즈를 취하기 전, 현정씨는 어머니의 립스틱을 빌려 정성스럽게 입술에 발랐다. 오랜만에 병실에 활기가 돌았다. 현정씨는 그동안 진통제에 취해 있어서인지 내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아뿔싸. 내가 머쓱해서 딴 곳을 쳐다보고 있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론 기억할 테니까 그런 불쌍한 표정 짓지 마세요.” 상태가 좀 나아지자 계속 사람들을 웃겼다. 문병을 온 어머니 친구들이 선물을 전해주고 현정씨의 짐 일부를 집에 가져가려고 하자 “조금 주시고 많이 가져가시네요” 하는 식이다. 나는 통증이 다시 고개 드는 현정씨를 부축해 병동 복도를 산책했다. “산에 꽃이 어찌나 많이 피었던지…” 그는 가족들과 꽃구경 간 일을 자랑했다. “탤런트들은 키가 쥐똥만하다면서요?” 이런 엉뚱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래도 쥐똥보단 클 거라고 대답했다. 그는 쥐똥은 키가 작은 나무의 이름이라고 일깨워주었다. 제주도에서 쥐똥나무를 직접 봤다고 한다. 그는 탤런트의 키가 아니라 건강했던 시절 제주도에서 본 나무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병실에 돌아와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물었다. “유치하게 애인한테 엄마한테 뭐 보고 싶다 사랑한다 그런 말 해야겠어요? 이렇게 써줘요. 우리 빨리 나아서 집에 갑시다. 짠~” 이 말과 함께 손으로 V자를 그렸다. “짠~도 넣어드려요?”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정씨는 지금 자신이 ‘이 꼴’인데 얼굴이 어려 보이면 뭐하냐고 한탄했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의 씩씩한 모습은 용기, 인내, 희망 등 교과서에나 나오는 가치들이 삶 속에 현존하고 있음을 가족과 병동의 모든 사람에게 가르쳐주었다. 한 자원봉사자는 항상 웃음으로 자신을 맞이하고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든 상황인데도 떠날 때면 사탕을 한 움큼씩 집어주던 간암 환자를 기억하고 있다. 그는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는 환자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호스피스팀은 심신이 쉽게 소진되게 마련이다. 외국에는 호스피스 팀원들만을 따로 상담하는 스태프들이 있지만, ‘척박한 한국’에서 팀원들은 환자에게 힘을 얻는다. 환자의 고통은 무의미하지 않다. 4월13일- 죽음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의사, 수녀,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한 팀회의를 마치고 병실에 들어서자 현정씨는 나를 보고 “아줌마, 머리 잘라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구토할 힘이 없어 코에 관을 꽂고 음식물을 먹음과 동시에 빼내고 있었다. 관에 연결된 링거병이 곧 음식물과 체액으로 가득 찼다. 5일 전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을 때만 해도 “밖에서 보니 좀 깔끔해 보인다”며 나를 웃겼던 현정씨는 정신을 놓아버렸다. 현정씨가 잠들자, 어머니는 성경책을 들고 기도실로 향했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까지 현정씨 옆을 지켰다. 병실은 고요했다. 반쯤 열린 창문에서 봄바람이 기분 좋게 뺨에 와 닿았다. 현정씨의 숨소리를 들으며 반쯤 잠에 취했다. 옆 침대 환자의 보호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 다음엔 아프지 말고 좋은 데서 태어나”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몽롱한 상태로 나는 어떻게 죽어야 할까를 생각해보았다. 전에는 갑자기 사고로 죽거나 자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 최고의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모두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게 고개를 꾸벅이며 어머니가 올 때까지 앉아 있었다. 4월15일-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 도대체 죽음이란 무엇인가. 언젠가 러시아 소설에서 호기심 많은 어부의 이야기를 읽었다. 궁금한 것은 반드시 밝혀내야 하는 그 어부는 어느 날 죽음이 궁금해졌다. 온 세상을 돌아다녔지만 죽음에 대해 아는 현자는 없었다. 결국 미칠 것 같은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던 그는 호수에 뛰어들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병상과 통증과 모르핀과 용서와 평안은 우리가 가야 할 멀고 먼 길이다. 죽음은 그가 사랑했던 혹은 증오했던 모든 사람의 손을 잡고 가는 길이다. 우리는 쉽게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단단해져야 한다. 그래야 떠나는 사람들이 우리를 밟고 건널 수 있다. 호스피스는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튜브를 꽂고 의사의 선고를 기다리는 우리의 ‘근대적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총선 투표일이다.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나는 병실의 봄햇살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산 사람들의 발걸음도 죽음의 과정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 좀더 겸손하게 더 많은 사람들의 손을 잡고 가야 하는 것 아닐까. 2004년 4월23일 낮 12시45분 눈부시게 화창한 날, 24살의 이현정씨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미 많은 소중한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어머니는 다윗처럼 씩씩하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얼마나 아팠니. (간암으로 먼저 세상을 뜬) 아버지랑 잘 만나라. 엄마도 나중에 갈게.”“국가가 호스피스 센터를 만들라” [인터뷰 | 김민정 성바오로 병원 호스피스 병동과장]
-호스피스와 내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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