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할머니의 사무친 그리움
등록 : 2000-11-21 00:00 수정 :
여든셋이란 나이가 믿어지지 않았다. 전화 저쪽에서 들리는 또렷한 목소리는 다이얼을 돌릴 때의 걱정을 깨끗이 덜어줬다. 전북 익산시 왕궁면에 사는 송철봉(83) 할머니. 송 할머니는 10여년 전 사별한 남편에 대한 순간순간의 그리움을 적어놨던 일기장을 정리해 <님은 가시고 꽃은 피고>(방문사 펴냄)란 시집을 엮어냈다.
“막내사위가 어떻게 일기장을 보고선… 한 보따리 싸가더니, 책으로 냈다고 하데. 내가 쓴 책이라고 하기도 뭣하지.”
송 할머니가 일기를 꼬박꼬박 써온 건 12년 전 남편이 세상을 뜬 뒤부터. 가계부를 기록하는 틈틈이 써온 일기장이 수북이 쌓여 바느질할 때 사용하는 자(잣대) 길이만큼 됐다고 한다.
“우리 영감? 금융조합(지금으로 치면 은행) 다녔는데 참 싸나웠지(사나웠지). 바깥에선 인기가 많은 양반이었지만 집에선 무척 엄했어.”
그런데도 무슨 그리움이 그렇게 많이 남았을까.
“몇년이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 버스 타고 가다 불이 나는 바람에 크게 다쳤지. 돌도 안 지난 아이를 안고 버스 바닥에 엎드렸지. 다행히 아이는 한 군데도 데지 않았는데 난 머리칼이 다 타고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병원에 실려갔어. 아, 그런데 영감이 허겁지겁 달려와 눈물을 흘리며 그러데. ‘먼저 가면 절대 안 돼. 세상 뜰 때 같이 손잡고 가자’며. 나도 다 눈물이 나더라고.”
“금실이 좋지 않았으면 어떻게 9남매나 낳았겠어, 안 그래?”
송 할머니가 낸 시집에는 남편과 함께한 수십년의 세월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단상, 사랑과 희생 등 삶 주변이 잔잔하게 녹아 있다.
“잠깐 세우에 녹색신엽/ 더욱 청청 눈부셔라/ 적색단풍에 기대선 옥매화야/ 호접이 너더러 무어라 속삭이더냐….”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