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각국 외국인노동자 공동체의 리더들이 일요일마다 성공회대를 찾는 이유는?
외국인노동자와 만나는 일은 더이상 낯선 경험이 아니다. 가끔은 지하철 옆자리에 동남아시아 노동자와 무릎을 맞대고 앉고, 점심 때 식당에서 조선족 아주머니의 ‘서빙’을 받기도 하며 더러는 아프리카 이주 노동자와 회사 동료가 되기도 한다. 부천, 안산, 의정부, 안양, 수원 등 공장지대를 끼고 있는 도시에 산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외국인노동자들을 만나는 곳이 ‘대학’이라면? 그건 좀 낯설다.
고된 노동에되 아랑곳하지 않고
11월19일 오전 8시40분 성공회대학. 일요일의 텅 빈 대학교정에 들어서자 쌀쌀한 초겨울 바람이 스산함을 더했다. 이날은 성공회대 NGO학과 아시아 NGO 정보센터가 주최하는 ‘외국인노동자 지도자 과정’의 세 번째 강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11월 첫쨋주 일요일에 문을 연 이 과정은 한국의 대학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첫 번째 교육이다. 강의실인 새천년관 4층 교수회의실에 들어서자 성공회대 NGO학과 박경태 교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학기 스리랑카와 네팔 노동자가 우리 학교 NGO대학원에 와서 외국인노동자 공동체에 대한 사례발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우리도 NGO고 이런 교육을 받고 싶다’고 먼저 제안을 했어요. 그게 계기가 돼 시작하게 된 겁니다.” 박 교수가 ‘외국인노동자 지도자 과정’의 설립 배경을 설명하는 사이 버마 노동자들이 들어왔다. 이들은 손에 “대학을 열어라!”(Open the university)라고 적힌 서명용지를 들고 있었다. 몇년째 폐쇄된 상태로 있는 버마의 대학을 다시 열 것을 요구하는 것. 버마 노동자들은 자국의 정치상황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강의에 대한 열의가 높다. ‘외국인노동자 지도자 과정’은 매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1시까지 10주 과정으로 운영된다. 한국 내 외국인노동자운동의 역사, 한국사회와 문화, 한국의 민주화와 노동운동, 노동자 국제연대 등이 강의 주제다. 강의 진행을 맡고 있는 김애화(노동인권회관 간사)씨는 “강의를 통해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외국인 노동운동가를 양성하는 것이 기본 취지”라며 “주제는 추상적이지만 가능한 쉽게 접근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는 교육을 받은 이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 NGO 활동가로 성장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아시아 NGO 네트워크가 형성될 것도 기대하고 있다. 9시가 넘어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도착했다. 뒤늦게 도착한 이들에게 농담삼아 코리언 타임 얘기를 건네자 방글라데시 노동자 알럼이 “그건 방글라데시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코리언 타임이 아니라 아시안 타임”이라고 웃으며 받았다. 경기도 마석에 사는 이들이 서울과 부천의 경계에 위치한 성공회대까지 오는 데는 두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연장근무가 잦은 탓에 평일은 보통 8∼9시, 토요일은 저녁 5∼6시까지 일하기 일쑤다. 연이어 공동체 모임이 일요일 새벽까지 이어진다. 짬이 나는 시간이 주말밖에 없는 탓이다. 그런데도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강의에 빠진 적이 없다. 박경태 교수는 “강의를 공동체 리더들이 가장 바쁠 시간인 주말에 열 수밖에 없어서 처음엔 몇명이나 올까 걱정했다”며 “참가 숫자도, 진지한 분위기도 기대 이상”이라고 말했다. 전태일을 읽고 민중가요를 부르며…
현재 이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는 필리핀, 스리랑카, 네팔 등 아시아 6개국 26명. 지역의 외국인노동자 상담센터를 통해 나라별 공동체의 리더들을 추천받았다. 국내 외국인노동자 공동체는 5∼6년 전부터 생겨나 이미 리더 그룹이 형성된 상태다. 이들 공동체는 종교활동이나 친목도모, 상호부조를 중심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공동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외국인노동자 인권에 관련된 활동은 아직 활발하지 못하다. 나라별 공동체 사이의 연대도 미약한 편. 김애화씨는 “무엇보다 이 과정을 같이 배움으로써 공동체 리더들이 서로 가까워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리더들의 교우가 공동체간의 연대활동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늦춰지던 강의는 9시30분에 시작됐다. 오늘의 주제는 한국문화 배우기. TV에서 녹화한 민중가요 프로그램을 보며 80년대 한국 현대사를 강의하는 방식이다. 먼저 80년 광주의 시위 장면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 나온다.
“이 노래 아세요?(Do you know this song?)” “알아요.” “…”
“이 노래는 백기완 선생의 시를 짜깁기, 그러니까 컬렉티브 포이트리(collective poetry)한 겁니다.”
성공회대 영어학과 진영종 교수가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강의를 한다. 필리핀,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학생들은 영어에 능숙한 반면, 입국한 지 오래된 네팔이나 버마 사람들은 한국어가 더 쉽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광주 출정가>를 통해 광주민중항쟁을, <농민가>를 들으며 농민운동을 배웠다. 8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 경험담이며 반미투쟁 이야기도 섞여 들었다. 이어 87년 노동자 투쟁을 배경으로 <노동조합가>가 흘러 나오자 네팔 노동자 위즈라가 전태일 이야기를 꺼낸다.
“(한국의) 노동자를 대표하는 전태일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네, 다음에 레이버 무브먼트(labor movement)를 배울 겁니다.”
“레이버 컬처(labor culture)도 꼭 배우고 싶어요.”
“근데 전태일을 알아요?”
“네. 책도 읽고, 영화도 봤어요.”
버마 노동자 모조는 우연히 TV에서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고 <전태일 평전>도 구해서 읽었다고 한다. 지난 11월 노동자 대회에 참석한 사람이 많아서인지 거의 대부분이 전태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네팔 노동자 둘라는 “광주 얘기는 네팔에 있을 때도 알고 있었다”며 “네팔에도 90년에 민주화 시위가 있어서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일할 때 항상 반말을 들어서 존댓말을 쓰면 잘 못 알아 듣는다는 방글라데시 노동자 카비르는 “88년까지는 한국에도 노동자 권리 없었다”며 “우리는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권리 찾을 수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옆에 있던 알럼도 “외국인 사람한테 이런 거 많이 필요하다”며 팔뚝질을 해보인다.
외국인노동자 공동체 순회교육으로!
비디오 수업을 마칠 무렵 외국인노동자의 노래를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작곡은 버마 공동체에서 할 수 있다고 했다. 작사가 문제. <임을 위한 행진곡>처럼 강의를 듣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쓴 글을 모아 가사를 만들기로 했다.
다음엔 한국문화를 직접 체험해보는 시간. 학교 강당으로 자리를 옮겨 풍물 강습이 이어졌다. 진영종 교수의 지도에 따라 북과 장구를 두드리며 장단을 몇 가지 익혔다. 아시아라서 흡사한 것일까. 모두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악기가 있다”며 신나했다. 소리가 어긋날 때마다 “남의 악기 소리를 잘 들어야 하모니가 된다”고 강조하는 진 교수의 말은 마치 서로를 잘 이해해야 국경을 넘는 노동자 연대가 가능하다는 얘기처럼 들렸다. 단순한 가락이지만 몇분 지나지 않아 장단이 맞아 들어갔다.
물론 첫 번째 시도인 만큼 부족한 점도 있다. 김애화씨는 “수강생 중 여성 노동자가 없고, 강의 주제를 10가지로 추리다보니 페미니즘이 빠졌다”며 아쉬워했다. 무엇보다 수강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너무 적은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국내 외국인노동자의 숫자는 23만6천여명(2000년 4월 말 현재). 지도자 교육이라고 해도 26명은 부족한 숫자다. 김애화씨는 “현재의 교육 과정을 외국인노동자 공동체 순회교육으로 발전시켰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수업을 마친 외국인노동자들은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열리는 ‘외국인노동자 인권보고대회’로 향했다.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사진/'한국문화 배우기' 수업을 듣고 토론을 벌이는 외국인 노동자들)
“지난 학기 스리랑카와 네팔 노동자가 우리 학교 NGO대학원에 와서 외국인노동자 공동체에 대한 사례발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우리도 NGO고 이런 교육을 받고 싶다’고 먼저 제안을 했어요. 그게 계기가 돼 시작하게 된 겁니다.” 박 교수가 ‘외국인노동자 지도자 과정’의 설립 배경을 설명하는 사이 버마 노동자들이 들어왔다. 이들은 손에 “대학을 열어라!”(Open the university)라고 적힌 서명용지를 들고 있었다. 몇년째 폐쇄된 상태로 있는 버마의 대학을 다시 열 것을 요구하는 것. 버마 노동자들은 자국의 정치상황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강의에 대한 열의가 높다. ‘외국인노동자 지도자 과정’은 매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1시까지 10주 과정으로 운영된다. 한국 내 외국인노동자운동의 역사, 한국사회와 문화, 한국의 민주화와 노동운동, 노동자 국제연대 등이 강의 주제다. 강의 진행을 맡고 있는 김애화(노동인권회관 간사)씨는 “강의를 통해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외국인 노동운동가를 양성하는 것이 기본 취지”라며 “주제는 추상적이지만 가능한 쉽게 접근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는 교육을 받은 이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 NGO 활동가로 성장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아시아 NGO 네트워크가 형성될 것도 기대하고 있다. 9시가 넘어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도착했다. 뒤늦게 도착한 이들에게 농담삼아 코리언 타임 얘기를 건네자 방글라데시 노동자 알럼이 “그건 방글라데시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코리언 타임이 아니라 아시안 타임”이라고 웃으며 받았다. 경기도 마석에 사는 이들이 서울과 부천의 경계에 위치한 성공회대까지 오는 데는 두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연장근무가 잦은 탓에 평일은 보통 8∼9시, 토요일은 저녁 5∼6시까지 일하기 일쑤다. 연이어 공동체 모임이 일요일 새벽까지 이어진다. 짬이 나는 시간이 주말밖에 없는 탓이다. 그런데도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강의에 빠진 적이 없다. 박경태 교수는 “강의를 공동체 리더들이 가장 바쁠 시간인 주말에 열 수밖에 없어서 처음엔 몇명이나 올까 걱정했다”며 “참가 숫자도, 진지한 분위기도 기대 이상”이라고 말했다. 전태일을 읽고 민중가요를 부르며…

(사진/11월19일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연수제도 철폐,노동허가제 쟁취'를 외치고 있다)

(사진/'외국인노동자 지도자 과정'의 수강생들이 풍물을 배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