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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줌마’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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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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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차 운전자는 교통질서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그는 주행선과 추월선 양 차선에 걸친 채 달리고 있었다. “정말 못 말리는 아줌마구만.” 경적을 울리던 친구는 인내심을 잃고 있었다. 옆에 타고 있던 나는 친구가 조바심내는 것이 왠지 불안해서 한마디했다.“아줌마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니? 아가씨일지도 모르고. 내가 볼 땐 장발의 남자 같은데… 느긋하게 몰지 그래?” “요즘 저런 장발이 어딨어. 넌 외국생활 오래 해서 요즘 아줌마들을 몰라. 아줌마니까 저러지!” 친구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리고는 앞차가 주행선쪽으로 좀 이동하는 듯하자 쏜살같이 추월했다. 스쳐 지나가는 두차 사이의 간격은 거의 없는 듯했다. 그래서 흘끗 보았지만 마치 옆에 붙어앉은 사람처럼 그 차 운전자의 얼굴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거 봐, 내 말이 맞잖아! 장발의 남자라구.” 그 운전자는 20대 중반의 남자였다. “네가 잘못봤어. 아줌마야!” 추월하느라 집요하게 앞만 응시하던 친구는 내 말을 여지없이 묵살했다.

전체의 잘못을 한 집단에게…

며칠 전, 나를 보고 집필 작업으로 수척해졌다면서 야외로 나가 좋은 음식 사주고 드라이브시켜준 친구와 집에 돌아오면서 있었던 일이다. 그때 나는 더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자상한 배려를 해준 친구와 기분좋은 날 말다툼하기 싫어서였다. 하지만 나는 3년 전 귀국했을 때부터, 우리나라엔 ‘아줌마 이데올로기’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3년쯤 전, 나는 어떤 신문독자란에서 한 여고생이 “못 말리는 아줌마”라는(내 친구의 표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표현을 쓰면서 전철 등 대중교통수단 안에서 이른바 ‘아줌마’들의 ‘자리 차지하기’와 ‘수다떨기’를 비판한 글을 읽었다. 그때는 “아, 우리 사회에 이런 문제도 있구나” 하고 그 글에 동감했다. 하지만 그뒤 줄곧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 여고생의 지적대로 아줌마들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그들의 전매특허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 여학생의 말이 틀렸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집단의식이 발동할 경우 공공장소에서 ‘자리 점령하기’와 ‘큰소리로 떠들어대기’는 성별과 나이차 없이 자행되는 일이라는 것을 쉽게 발견하기 때문이다. 즉 오늘 우리 사회에서 공중예절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심각할 정도라서 그렇지 ‘아줌마’라고 해서 유별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점에서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사실 다른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공공장소에서 나쁜 것(특히 주책없는 것)은 모두 아줌마들이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이데올로기는 원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기정당화를 부정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한데, 이 경우는 일종의 ‘역(逆)이데올로기’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까 ‘아줌마 이데올로기’는 당사자 자신이 아니라 남들이 만들어서 아줌마라고 할 수 있는 사회계층에 뒤집어씌운 것이다. 그것이 ‘못 말리는 아줌마’라는 구호로도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지만 이것은 각종 인종차별 구호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아줌마 이데올로기’는, 촌스럽고 달갑지 않으며 심지어 혐오스럽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어떤 범주의 사람들에게 도맷금으로 떠넘김으로써, 그 범주 밖에 있다고 자의적으로 ‘위치 정립’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차별된 우월감을 느끼고자 하는 치졸한 전략이다. 또한 자기는 혐오스러움을 자행해도 비난의 화살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은밀히 챙기는 태도다. 이것은 비열한 ‘사회적 음모’의 전형이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적으로 비판받아야 할 태도이다.

아줌마 기피 현상의 원인은?

그리고 이런 역이데올로기의 부정적 파급효과는 언어사용에까지 미쳐서 ‘아줌마’라는 이 정답고 고상한 단어를 여성들 사이에서도 기피하려는 경향을 낳는다. 나는 어떤 모임에서 서른살쯤 돼보이는 여성이 초등학생에게 “아줌마가 뭐니 언니지!”라고 하는 말을 듣고 의아해 한 적이 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20대 여성이면 아줌마다. 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교육상 부정적인 언어 혼동을 주면서까지 자기 기만에 빠져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21세기가 정말 친밀감, 신뢰성, 연대성의 시대라면 이런 것들을 대표하는 단어는 바로 ‘아줌마’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폭넓은 연령층의 여성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또한 그들의 행동은 점점 고정관념을 벗어나 매우 자율적인 성향을 띤다. 이 점을 최근의 전세계적 관심과 연관해 보면(그 경향은 우리하고도 연관이 있으므로), 미 대선에서 전통적으로 여성표에 강세인 민주당 고어 후보가 고전한 중요 이유 중 하나가 부시에게 상당수 여성표가 몰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여성의 역할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변동의 구체적 영역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역할의 중심에 아줌마들이 있다.

김용석/ 전 로마그레고리안대 교수·철학uchronea@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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