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4월2일부터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됨에 따라 17대 국회의원을 뽑는 4·15 총선이 막을 올렸다. 탄핵 찬반집회가 중단되고 탄핵 논쟁이 헌법재판소로 모아지면서 이제 총선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고 있다. 유권자라면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어서 총선의 의미와 중요성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4년 전에도 그랬듯이 항상 선거판이 무르익을 때면 ‘이번만은 제대로 된 일꾼을 뽑아보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봇물처럼 쏟아진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대통령 탄핵안을 처리하면서 보여준 국회의 모습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역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줄을 이었고 각 정당의 지역 기반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점은 한줄기 ‘희망’이다. 흡족한 수준은 아니지만 경선을 통해 후보를 뽑는 모양새가 갖춰졌고 비례대표 후보에 여성이 다수 포진하는가 하면 장애우까지 특별 배려한 점은 눈에 띄는 ‘변화’이다. 일부 지역 경선에서 부적격자들이 경선을 통과한 뒤 중앙당의 묵인 아래 후보로 결정된 점은 아쉬움이 크지만 유권자들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때마침 이번호 <한겨레21>은 각 당의 총선 전략과 함께 후보자 면면을 분석해보았다. 정당도 보고 인물도 보고, 유권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희망’과 ‘변화’만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벌써부터 곳곳에서 불·탈법 선거운동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분명 ‘좌절’이다. ‘변화’를 거부하며 구태를 반복하는 것은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선거범죄 신고자에게 지급한 포상금이 1억원을 넘어섰고, 금품·향응을 제공받은 유권자에게 부과한 과태료도 6천만원을 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기 전의 집계인데다 16대 총선 때 지급된 전체 포상금이 4천여만원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불법선거 사례를 적발한 직원에게 일계급 특진을 내건 경찰이 ‘승진 잔치’를 벌여야 할 지경이라니 선거판이 뭔가 심상치 않다. 지난 2002년 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한 지인은 얼마 전 사석에서 “지역 선거꾼들이 다시 등장해 후보들을 돕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과태료 50배를 물린다고 하니 ‘위험수당’이 붙어 봉투만 두꺼워진 것 같더라”며 혀를 찼다. 그는 또 “‘돈은 막고 입은 풀겠다’는 선거법이 후보자의 유권자 접촉 기회를 차단하고 있어 정치 신인들은 여전히 설 땅이 없어 보였다”며 아쉬움도 표시했다.
미국의 한 신경과학자가 “사람이 무엇을 기억하려 할 때보다 잊어버리려 할 때 뇌가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아 화제가 됐다. 이는 사람의 뇌가 기억하는 것보다 잊어버리는 것이 훨씬 힘든 작업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 머릿속에 잊기 힘든, 잊어서는 안 될 일이 꼭 하나 있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일꾼을 뽑자’는 것이다. 굳이 기억할 필요도 없이 우리 머릿속에 뚜렷이 남아 있는 것을 애써 잊으려 하지 않는 게 쉽다고 하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사진/ 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