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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193명의 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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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3-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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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대통령 탄핵안 국회 가결의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해 지난호 ‘만리재에서’를 쓰지 않았더니 주위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졌다. 시의적절했다는 격려에서부터 ‘너도 노빠지’라는 비아냥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70% 안팎의 국민들이 ‘탄핵안 가결은 잘못’이라고 응답했듯이, 쏟아진 반응도 비슷했다. 여하튼 독자들께는 다시 한번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전하면서 더 이상 그런 ‘객기’를 부릴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번 탄핵안이 국회에서 발의 및 가결되고 헌법재판소로 넘겨진 뒤 결정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의 상황에 이르면서 많은 국민들이 한번쯤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을 들춰봤을 것이다. 어린아이들까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닐 정도니 그럴 수밖에. 학계와 전문가들은 국회의 가결 절차와 탄핵사유 추가, 탄핵 취하 등에 대한 규정이 애매모호한 탓에 분분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렇게 된 바에야, 향후 대통령 탄핵이 또다시 없으란 법도 없으니 불필요한 시빗거리가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 법 규정을 잘 손질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탄핵 논란을 지켜보면서 여러 해 전, 현장취재를 다닐 때 겪었던 한 가지 경험이 불현듯 떠올랐다. 검찰이 한 지방자치단체장을 수뢰 혐의로 구속했는데, 그 과정에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가혹행위가 있었으며 물증 없이 진술에만 의존한 수사임을 확인하고 보도한 적이 있었다. 1심에서 그 단체장과 부하 직원, 민원인 등은 징역 2~3년씩을 선고받았으나 보도 뒤 열린 2심에서는 모두 무죄로 풀려났다. 이어 단행된 검찰 정기인사에서 이 사건을 담당했던 부장검사와 수사검사는 지방 한직으로 발령 나는 ‘쓴맛’을 봐야 했다. 그래도 그들은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담당했던 사건의 피의자에게 무죄가 선고될 경우 그 진상을 따져 수사가 부실했거나 불·탈법 수사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 해당 검사는 소리 소문 없이 옷을 벗는 게 법조계에서는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벌써부터 국민들의 관심은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로 모아지고 있다. 탄핵심판은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한다. 말하자면, 국회가 검찰 역할을 하고 헌재가 법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국회 탄핵소추안 처리 과정에서 벌어졌던 적법성 논란은 일단 접어두자. 국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직무와 관련하여 헌법이나 법률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였는지를 판단해 표결에 부친 뒤 찬성 193명, 반대 2명으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193명 국회의원 모두가 수사검사이고, 소추위원인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의원들을 대표한 소송 담당 검사인 셈이다. 이제 곧 김기춘 법사위원장과,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포함한 변호인단 사이에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질 것이고, 헌재는 심리 결과 탄핵심판 청구가 이유 있으면 대통령을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하거나 이유 없다고 기각할 것이다.

검사들이 잘못된 수사에 대해 책임을 지듯, 야당 국회의원 193명은 헌재가 기각 결정을 내릴 경우 정계를 떠나는 게 옳을 듯하다. 헌재 결정이 총선 전이면 출마를 포기해야 하고, 총선 후라면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의원직을 내놓아야 한다. 석고대죄하는 모습이 그 정도는 돼야 ‘뛰어난 인물’이어서 뽑혔다는 선량(選良)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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