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사진 박원식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pwseek@hani.co.kr
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 엄한주(48) 교수를 두고 주위에선 ‘배구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국가대표 배구선수에서 캐나다 유학생으로 변신, 그리고 10년 만에 귀국해 대학교수가 된 엄 교수는 대한배구협회 전무이사직을 맡아 침체에 빠진 ‘배구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겨울 리그를 준비하느라 한달에 20일 이상 대리운전해 집에 들어가고 하룻저녁에도 서너개 겹치기로 약속을 잡기가 일쑤였다”며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지난해 12월20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배구 KT&G 브이투어 2004’ 개막경기가 만원 관중으로 꽉 찼을 때 배구인들 사이에서는 “또 이러다 말겠지” 하는 자조적인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목포, 인천, 구미, 대전 등 전국을 돌며 치러진 투어 대회에선 배구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증폭됐고, 사상 처음 열린 올스타전에서는 겨울 스포츠의 꽃으로 각광받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당연히 배구인들의 입은 함지박만하게 벌어질 수밖에.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팀은 줄줄이 해체되고, 일방적인 협회 행정에다 특정팀의 독주로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불확실성의 원리’까지 쏙 빠져 팬들의 외면을 받아온 배구가 과거의 인기를 회복하게 된 배경으로 배구인들은 배구협회의 ‘상머슴’ 엄한주 전무를 지목하고 있다. 밤늦도록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에 몰두하고 조정과 타협이라고는 모르던 그의 이력과 습성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전무이사를 맡고 난 뒤 발뒤꿈치가 닳도록 7개월을 뛰어다녔다. 그는 배구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이경수 스카우트 파동을 ‘읍소 작전’으로 풀어냈다. 모든 구단을 일일이 찾아가 협조를 얻어낸 것이다. 씀씀이가 헤펐던 협회 행정도 그의 원칙 앞에선 제자리를 잡았다. 한때 40억원에 육박하던 협회 예산이 23억원으로 대폭 줄었음에도 큰 타격 없이 협회를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스포츠 행정가로서의 능력을 맘껏 발휘하고 있는 엄 전무가 두 번째 내놓을 작품은 배구의 프로화다. “올해 안에 반드시 배구를 상품으로 만들어 내놓겠다”며 “기업 홍보에 관심이 많은 국내 기업들이 프로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