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석재현씨, 동료들의 품으로 돌아오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반갑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3월19일 저녁 서울 사간동 갤러리 편도나무는 기쁨으로 술렁였다. 수십개의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번쩍 터졌다. 탈북자 취재 도중 중국 공안에 잡혀 옥살이를 하던 사진가 석재현(34)씨가 가석방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지인들이 마련한 환영의 자리였다. 불안한 감옥 생활에 20여kg이 훌쩍 빠진데다 햇빛을 쐬지 못해 더욱 창백해 뵈는 석씨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편의 구명운동을 위해 수십 차례 중국행을 마다하지 않았던 부인 강혜원(38)씨도 눈물을 글썽였다. 이달 초 그의 석방을 촉구하기 위한 후원 사진전(<한겨레21> 499호 참조)이 끝난 것이 사흘 전. 예상보다 빠른 귀환에 사진계 동료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군요” “오늘 아침 10시께 석방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감옥 안팎의 정보를 주고받는 게 불가능해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저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만 앞세웠다가 여러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군요.” 사진계의 큰 선배인 김녕만 <사진예술> 사장이 다독였다. “우리 사진가들은 카메라만 있으면 무섭지도 춥지도 않지요. 아마 재현이는 감옥에서 사진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을 겁니다.” 곁에 서 있던 친구 이상엽씨는 “두부 먹었냐”고 농담을 던지며 참석자 모두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석씨가 탈북자 취재를 결심하게 된 것은 <뉴욕타임스>의 의뢰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이슈를 끊임없이 터뜨리는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을 인터뷰하면서부터였다. 그가 전해준 정보를 이용해 그는 탈북자들을 밀착취재하는 길을 알게 됐고, 2003년 1월13~18일 5박6일 동안 ‘엑소시스트21’ 등 민간단체의 주선으로 탈북자 20여명이 지린성 옌지에서 출발해 산둥성 옌타이항까지 도착하는 작전 ‘리본’을 취재했다. “누군가의 밀고가 있었는지, 탈북자와 가이드들은 한국행 배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선착장에서 기습 체포됐죠. 그동안 취재했던 필름이 담겨 있는 스틸카메라 2개와 비디오 2대도 몽땅 뺏겼고요. 잡히고 나서도 처음엔 감이 없었어요. 금방 풀려날 줄 알고 열흘 동안 단식투쟁을 했으니까요.” 최종 결심에서 2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차라리 형이 확정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탈북자 돕다 갇힌 사람들을 돕자 그는 외국인전용 교도소에 가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10년 이상의 중형을 받은 중국인 죄수들과 함께 갇혀 있었다고 했다. “감옥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한방을 쓰는 20여명이 함께 나란히 앉아 대변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변을 다 모아 한꺼번에 치우기 때문에 냄새는 또 얼마나 지독한지.” 또 이처럼 위험한 취재를 다시 할 생각이 있냐고 묻자 그는 “앞으로는 현명하게 해야겠죠”라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하고 싶은 일은 많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중국에는 탈북자들을 돕던 사람들이 10명이나 갇혀 있습니다. 이들이 빨리 풀려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 가장 급합니다.”

대통령 탄핵 소식도 중국인 죄수로부터 들었다는 석재현씨는 바깥 소식을 듣지 못한 채 막막하게 기다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강재훈 기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군요” “오늘 아침 10시께 석방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감옥 안팎의 정보를 주고받는 게 불가능해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저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만 앞세웠다가 여러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군요.” 사진계의 큰 선배인 김녕만 <사진예술> 사장이 다독였다. “우리 사진가들은 카메라만 있으면 무섭지도 춥지도 않지요. 아마 재현이는 감옥에서 사진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을 겁니다.” 곁에 서 있던 친구 이상엽씨는 “두부 먹었냐”고 농담을 던지며 참석자 모두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석씨가 탈북자 취재를 결심하게 된 것은 <뉴욕타임스>의 의뢰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이슈를 끊임없이 터뜨리는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을 인터뷰하면서부터였다. 그가 전해준 정보를 이용해 그는 탈북자들을 밀착취재하는 길을 알게 됐고, 2003년 1월13~18일 5박6일 동안 ‘엑소시스트21’ 등 민간단체의 주선으로 탈북자 20여명이 지린성 옌지에서 출발해 산둥성 옌타이항까지 도착하는 작전 ‘리본’을 취재했다. “누군가의 밀고가 있었는지, 탈북자와 가이드들은 한국행 배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선착장에서 기습 체포됐죠. 그동안 취재했던 필름이 담겨 있는 스틸카메라 2개와 비디오 2대도 몽땅 뺏겼고요. 잡히고 나서도 처음엔 감이 없었어요. 금방 풀려날 줄 알고 열흘 동안 단식투쟁을 했으니까요.” 최종 결심에서 2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차라리 형이 확정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탈북자 돕다 갇힌 사람들을 돕자 그는 외국인전용 교도소에 가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10년 이상의 중형을 받은 중국인 죄수들과 함께 갇혀 있었다고 했다. “감옥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한방을 쓰는 20여명이 함께 나란히 앉아 대변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변을 다 모아 한꺼번에 치우기 때문에 냄새는 또 얼마나 지독한지.” 또 이처럼 위험한 취재를 다시 할 생각이 있냐고 묻자 그는 “앞으로는 현명하게 해야겠죠”라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하고 싶은 일은 많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중국에는 탈북자들을 돕던 사람들이 10명이나 갇혀 있습니다. 이들이 빨리 풀려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 가장 급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