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단가횡포 속에 부담 홀로 떠안는 중소납품업체들, 인천의 두 공장 현장을 가다
인천= 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3월19일 낮, 인천 남구에 있는 주안공단. 공단 6블록쪽에 자리잡은 ㄷ기업의 공장·사무실은 각 층마다 노란색 바구니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생산공장이 아니라 물류창고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바구니에 담긴 물건은 대개 고무를 주원료로 제작된 것들인데 종류가 무려 1천여 가지에 이른다. ‘부평·군산 대우차 출하 대기’라고 적힌 품목설명서가 보여주듯, 모두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GM대우자동차 등 대기업에 보낼 자동차 부품들이다.
공급처와 납품처, 양쪽 대기업 사이에 끼어…
종업원 160여명인 ㄷ기업은 천연고무를 주요 원자재로 써서 자동차에 들어가는 고무부품 및 고무·철 접합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 납품업체다. 최근의 원자재 파동에서 가격 폭등과 공급 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대표적인 품목으로 철강재가 꼽히고 있지만, 고무값도 철강재 못지않게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있다. 말레이시아 등 산지의 생산량이 줄어든데다 중국의 수요가 급증하고 여기에 사재기까지 겹쳐 고무값은 폭등을 거듭했다. 2년 전에 t당 550달러이던 고무값은 지난해 11월께 850달러로 뛴 뒤 지난 2월 1400달러까지 수직선을 그으며 쉼없이 치솟았다. “850달러로 올랐던 지난해에는 현대자동차에 납품단가를 올려달라는 얘기를 꺼내지 못했어요.” 이 회사 상무 ㄴ씨는 고무값 인상분을 회사가 중간에서 흡수, 차단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무슨 말일까? 이 업체가 고무 원자재를 납품받아오는 집은 종업원 1천명 이상인 다른 국내 대기업이다. “지난해에 고무값이 크게 뛰었을 때 고무를 공급하는 그 집에 우리가 납품가격을 11∼15% 정도 인상해줬습니다. 이달에도 조금 더 인상을 해줬고…. 고무 확보 자체가 급급한 판이라 ‘저 집’에서 고무 물량을 받아오려면 요구하는 대로 인상된 가격을 다 쳐줘야 했죠.” 원자재값 인상분의 고통을 ㄷ기업이 모두 흡수한 것이다. 그런데 가격이 폭등한 고무를 가공해 자동차 부품을 만든 뒤 어느 자동차업체에 납품했다면 원자재값이 오른 만큼 이번에는 그 대기업으로부터 납품단가를 올려받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 부품업체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이런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재재값 인상분을 흡수하고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는 ㄴ씨의 말은 ‘갑’과 ‘을’의 처지를 그대로 반영한다. “어떤 자동차 모델에 들어가는 부품을 우리가 납품하기로 하면 그 당시에 한번 정해진 가격이 몇년이 지나도 그대로 유지돼요. 아니, 유지만 해줘도 다행이고 대기업이 해마다 납품단가를 더 깎아버려요.” 결국 차종의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져 그 부품이 들어가는 차종이 하루빨리 단종될수록 부품업체들에게는 이득이다. 신차에 들어갈 새 부품 납품계약을 맺으면 그때서야 인상된 원자재값을 반영해 납품단가를 올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무값이 폭등해 이 기업의 채산성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지만 애초에 자동차업체는 납품단가를 올려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 회사가 원자재값 인상분을 어떤 식으로든 자체 흡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지경까지 왔다. ㄴ씨는 “고무값이 너무 뛰는 바람에 우리가 아무리 생산성 향상 노력을 기울이고 비용절감을 해도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상태”라며 “그래서 지금은 우리한테 고무를 공급하는 ‘저 집’에 ‘자동차업체가 납품단가를 올려주기 전에는 우리도 고무값을 올려주기 어렵다’고 버티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양쪽 대기업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신세인 것이다. 7년 전 납품단가 꿈쩍도 안 해 대기업과 중소 납품업체간에는 원자재값이 10% 정도 오를 경우 단가 인상 요구를 납품업체 스스로 아예 포기하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그런데도 중소 부품업체에서 기술개발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면 그에 따른 이득은 부품업체와 완성차업체가 나눠갖는다. 예컨대 중소 납품업체가 한 생산설비에서 10개 생산하던 것을 20개로 늘리려면 원청 대기업한테서 미리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때 대기업은 “그렇게 비용을 절감한 부분만큼 납품단가를 더 깎자”고 요구하는 것이다. ㄴ씨는 “그동안 대기업 완성차 구매담당 실무자들에게 전화상으로 납품단가를 올려줘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긴 했지만, 공식적으로 납품가 인상 요구 공문을 보내지는 못했다”며 “최근 완성차업체쪽에서 납품가 현실화를 검토한다는데 얼마나 올려줄지, 진짜로 올려줄지는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안공단에서 차를 타고 서쪽으로 30분쯤 달리면 인천 서부공단이 나온다. ㅇ기업은 이곳 1블록 주물공단에 자리잡은 종업원 26명의 조그만 중소업체로, 물을 뽑아올릴 때 쓰는 펌프 프로펠러 생산업체다. 같은 공단에 있는 주물용 선철업체한테서 강고철 등을 공급받아 녹인 뒤 펌프 프로펠러를 생산하는데, 주요 국내 납품처는 현대중공업과 효성에바라 등이다. 이 회사 과장 ㅇ씨는 “저쪽 집에서 강고철이 kg당 190원에서 400원으로 올랐으니 그리 알아라. 당신들 말고도 사려는 사람은 줄섰다. 400원 주기 싫으면 마라는 투로 나오고 있다”며 “최근 주물로 녹여쓸 쇠가 없어 회사가 가동을 중단해야 할 상황까지 처했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금도 고철 원자재 재고가 바닥나 당일치기로 근근이 넘기고 있다. 오늘 쓸 물량은 탈탈 털어 다 쓰고, 내일 쓸 물량은 또 내일 아침 일찍 고철업체에 가서 사정사정해 받아오는 식이다. 그래서 철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시간도 오후 4시로 한정돼 있다. “우리 회사 사장이 고철을 공급하는 저 집에 가서 현금 2천만원을 선수금으로 미리 주고 그쪽 사장한테 밥 사주면서 우리한테 물량을 대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중입니다.”
펌프 프로펠러에 쓰이는 원자재 중 스텐고철은 kg당 940원이던 것이 최근 1800원으로 뛰었고, 니켈은 kg당 9400원에서 2만3천원까지 폭등했다. 그런데 거래처 중에서 현대중공업은 물량이 적고 가격도 고가라서 계약할 때마다 납품단가를 새로 결정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납품물량이 많은 효성은 7년 전의 납품단가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ㅇ씨는 “(효성이) 지난 95년부터 납품단가를 억눌러왔다. 외환위기가 터지고 납품가 인상 요인이 발생했지만 단가는 똑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품목별 원가 리스트를 작성한 뒤 이것을 효성에 보내 납품단가를 최소한 10% 이상 인상해달라고 수차례 요구했다. 그런데도 효성이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자 참다못해 결국 “부품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효성에 통보하기도 했다.
“자재값이 올라가면 대기업은 하청업체한테 무조건 얼마씩 까라고 전가해요. 참고 견디고, 우리가 인상분을 자체 흡수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우리가 아무리 공정개선·원가절감을 해봤자 깎인 납품단가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요.” ㅇ씨는 이어 “지금 이 기회가 아니면 납품단가를 인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차피 원자재 부족 사태로 공장 가동도 힘들고, 원자재값이 폭등했는데도 대기업이 납품단가 현실화는커녕 단가를 오히려 더 깎겠다는 통보만 하고 있어서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만 보는 상황이다.
'단가 현실화' 요구 집단행동도
이럴 바에야 원자재 대란이 터졌을 때 중소업체들이 집단 행동을 통해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관행을 고쳐보자는 것이다. 실제로 경인지역 30여개 중소 주물업체들은 지난 3월8일 납품단가 현실화를 요구하며 하룻동안 납품을 중단하기도 했다. 물론 대기업쪽이 꺼내들 ‘납품계약 해지’라는 위협을 감수해야 한다.
연초만 되면 대기업들은 ‘상생’ ‘동반 성장’ 같은 구호를 내걸고 협력업체 지원방안을 의욕적으로 발표한다. 하지만 이는 말뿐이고, 현장에서 중소 납품업체는 끊임없는 희생만 강요받고 있다.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후려쳐도 항의하면 납품처를 다른 업체로 바꿔버릴까봐 참아야 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납품단가의 실태를 토로하는 부품업체 이름이 유출되지 않도록 신경 써달라고 각별히 부탁했다.

대기업의 납품 단가 후려치기 관행으로 중소 부품업체들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안공단의 한 중소기업 공장.
종업원 160여명인 ㄷ기업은 천연고무를 주요 원자재로 써서 자동차에 들어가는 고무부품 및 고무·철 접합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 납품업체다. 최근의 원자재 파동에서 가격 폭등과 공급 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대표적인 품목으로 철강재가 꼽히고 있지만, 고무값도 철강재 못지않게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있다. 말레이시아 등 산지의 생산량이 줄어든데다 중국의 수요가 급증하고 여기에 사재기까지 겹쳐 고무값은 폭등을 거듭했다. 2년 전에 t당 550달러이던 고무값은 지난해 11월께 850달러로 뛴 뒤 지난 2월 1400달러까지 수직선을 그으며 쉼없이 치솟았다. “850달러로 올랐던 지난해에는 현대자동차에 납품단가를 올려달라는 얘기를 꺼내지 못했어요.” 이 회사 상무 ㄴ씨는 고무값 인상분을 회사가 중간에서 흡수, 차단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무슨 말일까? 이 업체가 고무 원자재를 납품받아오는 집은 종업원 1천명 이상인 다른 국내 대기업이다. “지난해에 고무값이 크게 뛰었을 때 고무를 공급하는 그 집에 우리가 납품가격을 11∼15% 정도 인상해줬습니다. 이달에도 조금 더 인상을 해줬고…. 고무 확보 자체가 급급한 판이라 ‘저 집’에서 고무 물량을 받아오려면 요구하는 대로 인상된 가격을 다 쳐줘야 했죠.” 원자재값 인상분의 고통을 ㄷ기업이 모두 흡수한 것이다. 그런데 가격이 폭등한 고무를 가공해 자동차 부품을 만든 뒤 어느 자동차업체에 납품했다면 원자재값이 오른 만큼 이번에는 그 대기업으로부터 납품단가를 올려받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 부품업체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이런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재재값 인상분을 흡수하고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는 ㄴ씨의 말은 ‘갑’과 ‘을’의 처지를 그대로 반영한다. “어떤 자동차 모델에 들어가는 부품을 우리가 납품하기로 하면 그 당시에 한번 정해진 가격이 몇년이 지나도 그대로 유지돼요. 아니, 유지만 해줘도 다행이고 대기업이 해마다 납품단가를 더 깎아버려요.” 결국 차종의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져 그 부품이 들어가는 차종이 하루빨리 단종될수록 부품업체들에게는 이득이다. 신차에 들어갈 새 부품 납품계약을 맺으면 그때서야 인상된 원자재값을 반영해 납품단가를 올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무값이 폭등해 이 기업의 채산성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지만 애초에 자동차업체는 납품단가를 올려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 회사가 원자재값 인상분을 어떤 식으로든 자체 흡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지경까지 왔다. ㄴ씨는 “고무값이 너무 뛰는 바람에 우리가 아무리 생산성 향상 노력을 기울이고 비용절감을 해도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상태”라며 “그래서 지금은 우리한테 고무를 공급하는 ‘저 집’에 ‘자동차업체가 납품단가를 올려주기 전에는 우리도 고무값을 올려주기 어렵다’고 버티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양쪽 대기업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신세인 것이다. 7년 전 납품단가 꿈쩍도 안 해 대기업과 중소 납품업체간에는 원자재값이 10% 정도 오를 경우 단가 인상 요구를 납품업체 스스로 아예 포기하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그런데도 중소 부품업체에서 기술개발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면 그에 따른 이득은 부품업체와 완성차업체가 나눠갖는다. 예컨대 중소 납품업체가 한 생산설비에서 10개 생산하던 것을 20개로 늘리려면 원청 대기업한테서 미리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때 대기업은 “그렇게 비용을 절감한 부분만큼 납품단가를 더 깎자”고 요구하는 것이다. ㄴ씨는 “그동안 대기업 완성차 구매담당 실무자들에게 전화상으로 납품단가를 올려줘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긴 했지만, 공식적으로 납품가 인상 요구 공문을 보내지는 못했다”며 “최근 완성차업체쪽에서 납품가 현실화를 검토한다는데 얼마나 올려줄지, 진짜로 올려줄지는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원자재값 폭등에 따른 납품가 현실화를 촉구하기 위해 3월 중순 철강 · 주물 중소기업협동조합 간부들이 모였다.(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