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말하는 ALS 환자의 절망적 나날… 요양시설을 갈망하는 그들의 간절한 절규
송재규(48)씨는 ‘눈으로 말한다’.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길은 오직 두눈을 통해서다. “소변 보고 싶어요.”, “다리가 불편해요.”, “가려워요.” 그는 이런 의사표시를 두눈의 깜빡임을 통해 부인 정영희씨에게 전한다.
약간 길고 복잡한 의사표시를 해야 할 때는 유아용 플라스틱 글자판- 가나다라 등 기초적인 한글이 적혀 있다-에 정씨가 글자를 가리키면 역시 눈깜박임을 통해 글자를 하나하나를 찍어 뜻을 나타낸다.
송씨는 손, 발, 다리는 물론 온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신세다. 호흡근까지 마비돼 목 부위를 뚫어 기도와 이은 인공호흡기를 통해서야 숨을 쉴 수 있다. 식사도 배에 구멍을 내 위 속으로 바로 음식을 투입해야 한다. 그는 더이상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 송씨는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꼼짝할 수 없는 ALS환자인 것이다.
ALS는 우리말로 ‘근위축성측색경화증’이란 난해한 이름의 병으로 원인도 확실한 치료제도 없는 난치성 질환이다. 흔히 루게릭병으로도 불린다. 미국의 유명한 야구영웅 루게릭이 이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서울대 이광우 교수는 이 병을 두고 “인간이 앓고 있는 질병들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심한 마음의 고통과 좌절을 안겨주는 질병 중 하나”라고 말한다. 환자들도 “생사람을 가장 잔인하게 말라죽이는 병이 ALS”라고 토로했다.
루게릭병으로 불리며 생사람 말라죽여 92년 가을 어느 날, 송씨는 그야말로 느닷없이 이 병마에 포박당했다. 누구보다도 건강에 자신했던 만능스포츠맨인 그는 특히 테니스를 좋아했는데, 한창 테니스 경기를 하다 갑자기 한쪽 팔이 쑥 빠지는 듯한 느낌이 왔다고 한다. “팔이 왜 이러지?” 그날 이후, 송씨는 테니스를 더이상 계속 할 수 없을 정도로 팔힘을 점차 잃어갔다. 송씨는 이상하다 싶어 얼마 뒤 한의사를 하는 친구에게 증상을 이야기하자 한의사는 즉시 큰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권고했다. 송씨가 당시 비디오프로덕션 사업일로 바빠 진단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팔은 점점 더 심하게 힘을 잃더니 급기야 움직이기 힘들어졌고, 다리마저 서서히 풀리면서 제대로 걷기 힘들어졌다. 그제야 송씨는 서둘러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서울대병원의 담당의사는 ALS란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진단을 내리고는 동시에 끔찍한 불치병이라고 말해줬다. 청천벽력. 말문이 막히는 일이었다. 송씨는 병원의 진단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아니 믿고 싶지 않아 서울중앙병원 등 다른 병원들을 찾아 진단을 다시 받아봤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기대를 걸고 미국으로 떠났다. 5∼6번을 오가는 미국행. 미국의 의사들도 ALS라는 진단만 내릴 뿐, 치료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는 사이 송씨의 병세는 급속도로 악화돼더니 손발은 물론 온몸이 굳어갔다. 96년 8월, 송씨는 마침내 ALS환자들의 마지막 통과의례라는 ‘호흡곤란’증세를 보였고, 병원 중환자실로 실려갔다. 대수술을 통해 기도절제를 했고 급기야 인공호흡기를 목에 걸어놓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살아가야 하는 신세가 됐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은 아직은 더이상 나빠지고 있지 않다는 것뿐이다. 죽음보다 더 아득한 투병을 계속하고 있는 송씨도 송씨지만 부인 정씨의 고생 또한 이만저만 아니다. 그는 잠시라도 송씨의 곁을 떠날 수 없다. ALS환자들은 병세가 악화하면 꼼짝달싹 하지 못하기 때문에 늘 보호자가 곁에서 머물며 지켜봐줘야 한다. 입이 반쯤 열려 있어 입 밖으로 조금씩 새어 나오는 침을 5분도 채 안 되는 간격으로 닦아줘야 하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가끔 옆으로 몸을 돌려줘야 한다. 몇몇 환자가족들은 간병인을 두는 경우가 있는데,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서는 그 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사실 ALS환자 가족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막대한 치료비 문제다. 집안에 ALS환자가 생기면 가산이 거덜날 수밖에 없다. 1천만원대가 넘는 인공호흡기, 한달에 수십만원이 들어가는 약값…. 이런 막대한 비용도 그저 깨진 독에 물붓기일 뿐이다. 기약없이 그저 돈을 쓸 수밖에 없다. 송씨네도 서울 서초동 33평 아파트에서 남부러울 게 없이 살던 강남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이제는 정부로부터 생계지원을 받는 기초생활수급자(옛 생활보호대상자) 가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병은 약도 제대로 없어요. 그나마 치료제라기보다 병의 진행을 더디게 하는 지연제인 약이 하나 있는데, 약값이 엄청납니다. 예전에는 한달치가 보통 70만원가량 했어요. 이제는 국내에 수입이 되고 의료보험이 적용돼 26만원 정도인데, 여기에 다른 약을 더해 지금도 한달에 약값만도 30만원 이상 들어갑니다.” 엄청난 치료비에 가산 날려도 속수무책
11월15일, 서울 서초구 서초1동 자택에서 만난 송씨 부인 정씨는 ALS환자 가족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경제적인 문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이 겪는 고통이야 아무렴 환자가 겪는 고통만이야 하겠어요. 애기아빠는 수면제에다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정신이 말짱하고 모든 걸을 듣고 볼 수 있는데 자신은 움직이지 못하니 그 고통이야 오죽….”
얘기 도중 송씨가 정씨에게 두눈을 깜빡거렸다. “가래를 뽑아달라구요”라며 정씨가 그의 목 속으로 호스를 집어넣어 가래를 거푸 뽑아내고 입 안을 청소했다. 이어 다시 송씨가 정씨에게 눈을 깜빡였다(송씨는 말할 수 없지만 모든 걸 들을 순 있다. 송씨의 경우, 하루종일 누워서 TV를 본다고 한다). 기자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정씨가 통역했다. “건강에 신경쓰라고 하네요.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합니다.”
송씨가 또 끔뻑였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바라고 싶은 일 한 가지를 꼽으라면 자신과 같은 ALS환자들을 위한 요양시설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말을 하네요.” 부인 정씨가 통역한 송씨의 말이다. 송씨의 바람은 부인 정씨의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사진/인공호흡기에 의존해 하루하루 삶을 지탱하는 송재규씨 곁에는 언제나 부인 정영희씨가 있다. 두눈과 유아용 말배우기 글자판을 통해 그들은 모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루게릭병으로 불리며 생사람 말라죽여 92년 가을 어느 날, 송씨는 그야말로 느닷없이 이 병마에 포박당했다. 누구보다도 건강에 자신했던 만능스포츠맨인 그는 특히 테니스를 좋아했는데, 한창 테니스 경기를 하다 갑자기 한쪽 팔이 쑥 빠지는 듯한 느낌이 왔다고 한다. “팔이 왜 이러지?” 그날 이후, 송씨는 테니스를 더이상 계속 할 수 없을 정도로 팔힘을 점차 잃어갔다. 송씨는 이상하다 싶어 얼마 뒤 한의사를 하는 친구에게 증상을 이야기하자 한의사는 즉시 큰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권고했다. 송씨가 당시 비디오프로덕션 사업일로 바빠 진단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팔은 점점 더 심하게 힘을 잃더니 급기야 움직이기 힘들어졌고, 다리마저 서서히 풀리면서 제대로 걷기 힘들어졌다. 그제야 송씨는 서둘러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서울대병원의 담당의사는 ALS란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진단을 내리고는 동시에 끔찍한 불치병이라고 말해줬다. 청천벽력. 말문이 막히는 일이었다. 송씨는 병원의 진단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아니 믿고 싶지 않아 서울중앙병원 등 다른 병원들을 찾아 진단을 다시 받아봤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기대를 걸고 미국으로 떠났다. 5∼6번을 오가는 미국행. 미국의 의사들도 ALS라는 진단만 내릴 뿐, 치료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는 사이 송씨의 병세는 급속도로 악화돼더니 손발은 물론 온몸이 굳어갔다. 96년 8월, 송씨는 마침내 ALS환자들의 마지막 통과의례라는 ‘호흡곤란’증세를 보였고, 병원 중환자실로 실려갔다. 대수술을 통해 기도절제를 했고 급기야 인공호흡기를 목에 걸어놓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살아가야 하는 신세가 됐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은 아직은 더이상 나빠지고 있지 않다는 것뿐이다. 죽음보다 더 아득한 투병을 계속하고 있는 송씨도 송씨지만 부인 정씨의 고생 또한 이만저만 아니다. 그는 잠시라도 송씨의 곁을 떠날 수 없다. ALS환자들은 병세가 악화하면 꼼짝달싹 하지 못하기 때문에 늘 보호자가 곁에서 머물며 지켜봐줘야 한다. 입이 반쯤 열려 있어 입 밖으로 조금씩 새어 나오는 침을 5분도 채 안 되는 간격으로 닦아줘야 하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가끔 옆으로 몸을 돌려줘야 한다. 몇몇 환자가족들은 간병인을 두는 경우가 있는데,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서는 그 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사실 ALS환자 가족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막대한 치료비 문제다. 집안에 ALS환자가 생기면 가산이 거덜날 수밖에 없다. 1천만원대가 넘는 인공호흡기, 한달에 수십만원이 들어가는 약값…. 이런 막대한 비용도 그저 깨진 독에 물붓기일 뿐이다. 기약없이 그저 돈을 쓸 수밖에 없다. 송씨네도 서울 서초동 33평 아파트에서 남부러울 게 없이 살던 강남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이제는 정부로부터 생계지원을 받는 기초생활수급자(옛 생활보호대상자) 가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병은 약도 제대로 없어요. 그나마 치료제라기보다 병의 진행을 더디게 하는 지연제인 약이 하나 있는데, 약값이 엄청납니다. 예전에는 한달치가 보통 70만원가량 했어요. 이제는 국내에 수입이 되고 의료보험이 적용돼 26만원 정도인데, 여기에 다른 약을 더해 지금도 한달에 약값만도 30만원 이상 들어갑니다.” 엄청난 치료비에 가산 날려도 속수무책

(사진/1994년 겨울 용평스키장에서 단란한 한때를 보내던 송씨 가족. 송씨는 “가장 행복할 때가 딸 다정이가 곁에 와 손을 잡아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