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윤철수] 괴짜 의원님, 진짜 농사꾼

500
등록 : 2004-03-11 00:00 수정 :

크게 작게

친환경농법 전파하는 윤철수 서산시의원… 50여가구 참여 이끌어내 영농법인 출범 예약

서산= 글 · 사진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윤철수씨가 오리농법과 쌀겨농법으로 벼농사를 지을 논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그가 훌렁 모자를 벗었다. 그의 대머리가 저녁 노을에 반사돼 반짝였지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감춰서는 안 된다는 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웃지 말아달라고 충고한 것도 기자였다. 이를 새로 해넣으려고 그가 며칠 전 앞니 세개를 뽑아낸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윤철수(50)씨는 서산시의회 초선 의원이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시의회에서만은 그가 괴짜로 비칠 것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는 의원들의 회식 자리에 참석하지 않기로 공식 선언한 유일한 시의원이고, 해외연수를 다녀온 뒤 연수 보고서를 손수 써내는 유일한 시의원이며, 또한 한글 명패를 쓰는 유일한 시의원이다.

회식 거부 선언하고 연수 보고서 작성


“당선이 되고 나서 의회 사무국 직원에게 자리 배치를 어떻게 하냐고 물었지요. 물론 알고 물은 건데, ‘가나다’ 순이라고 하대요. 그래서 명패를 한글로 써놓고 그런 말을 해야 맞지 않냐고 했지요. 내 것만이라도 한글로 써달라고. 개원식에 갔더니 정말 내 명패만 한글로 써놨더라고요. 다른 의원이 ‘윤 의원은 호적에 한자로 안 올라갔냐’고 묻길래 ‘의원님은 선거운동할 때 홍보물을 왜 한글로 쓰셨냐, 폼나게 한문으로 쓰시지’라고 했지요.” 행정용어를 쉽게 쓰자는 그의 줄기찬 주장이 받아들여져, 그의 사무실 책장에는 이제 ‘會議錄’ 대신 ‘회의록’이 꽂혀 있다.

기자가 자칭 ‘서산시 석남동의 장승 같은 사내’ 윤철수씨를 만나러 간 것은 사실 그의 이런 이력 때문이 아니었다. 지난 1990년 안면도가 핵폐기물 처리장 후보지로 정해졌을 때, 그가 핵폐기장 설치 반대투쟁위원장을 맡았다는 것도 그를 만나고서야 알았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기자는 단지 그가 서산간척지 일부 농민들을 ‘선동’해, 올해부터 벼농사를 친환경 농법으로 바꾸려고 애쓰고 있는 사람이란 것만 알고 있었다.

바이오 농약 제조업체 직원한테 미생물 제제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윤철수씨와 농민들.
그는 “서산은 친환경 농업의 불모지”라고 말했다. 서산 농민들은 그동안 증산으로 경쟁해 1등을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단다. “개인적으로는 농민이 살려면 친환경 농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지요. 4년 전 자청해서 석남동 새마을 지도자를 맡았는데, 그때부터 다른 새마을 지도자들과 여기저기 견학도 가고 했어요.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금방 설득이 안 됐지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서야 이제는 친환경 농법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정말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커진 것이죠. 그리고 여기저기 견학을 다니면서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긴 것 같고요.”

그는 지난해 12월26일 지역 주민 7~8명과 ‘천수만’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정확히는 ‘천수만 생태보전을 위한 친환경 농업인 모임’이다. 장2동과 양대동 3통 마을 사람들은 사실 그와 인연이 깊다. 옛 현대건설 소유의 간척지를 분양받을 때 다른 마을 사람들은 싸움을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두 마을 사람들은 그를 끝까지 믿고 싸워 결국 마을과 가까운 쪽에 땅을 분양받았다. 그는 그런 마을 사람들에게 벼농사를 친환경 농법으로 전환해보자고 설득했다. 그리고 올 들어 2박3일씩 2차례에 걸쳐, 마을 사람들과 시청 공무원들을 데리고 전국 곳곳의 친환경 농법 현장을 견학 다니느라 바쁜 겨울을 보냈다.

철새의 천국 천수만을 친환경 농업단지로

“천수만 일대는 전 세계 가창오리의 90%가 겨울을 나는 철새의 천국이죠. 철새가 계속 날아오게 하려면 친환경 농업을 해야 하고, 철새가 날아온다면 그것을 브랜드화함으로써 친환경 농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서산시가 600억원을 들여 천수만 일대를 생태공원화하는 장기 계획을 추진하는 것도 그로 하여금 농민들 설득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했다. 하지만 그는 정부가 발간한 친환경 농업 모범사례집을 보고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래서 ‘정부 지원금을 받아내려고 폼만 잰 친환경 농업 단지’는 빼고, 정말 정신이 살아 있는 마을만을 골라 방문했다.

“몇년 전 주말농장을 만들어 시내 사람들에게 분양하는 일을 시도했는데, 완전히 실패했어요. 농민들이 친환경 농법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오히려 도시민들을 답답하게 생각했어요. 농심을 되살리지 못하면 친환경 농업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땅과 흙을 살리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가짐 말이죠. 도시 소비자들에게 잔머리를 굴려서 팔아먹으려 해서는 실패한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먹을 것을 줄 때처럼 정성과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런 사람들이 성공한 친환경 마을을 견학하면서, 몇십년씩 시행착오를 거쳐 익힌 기술을 열정적으로 가르쳐주는 사람들을 만나자, 우리 마을 사람들도 조금씩 공감을 하더라고요.”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우선 올해는 시험적으로 2만평만 새 농법으로 농사를 지어보기로 했다. 걱정이 많은 만큼 간척지가 아닌, 오래 전부터 농사를 지어온 육답에서다. 그래도 53가구나 참여하게 된 것을 그는 큰 성공으로 본다. 사실 가톨릭청년회 활동을 시작으로 농민회 일도 많이 했지만, 그는 한번도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다. 그는 그것을 콤플렉스로 여겨왔다. 4년 전 농사를 지으려고 사둔 1천평가량 논에서 그도 올해부터는 함께 농사를 짓기로 했다.

서산시가 친환경 농업 지원 예산으로 2억5천만원을 책정해놓고 있어 오리 사육장이나 울타리 비용 등은 지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농사 기술이야 곳곳에 선생님들이 많으니 배우면서 하면 된다지만 조류독감으로 새끼오리 입식이 어려워졌다는 게 우선 걱정이다. 친환경 농업으로 전환하는 기간에 많이 필요한, 값비싼 바이오 농약(미생물 농약) 대금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를 일이다. “하루아침에 이익을 챙기고 싶다면 아예 하지 말자고 했어요. 최소한 5년, 10년은 내다보고 하자고 했지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어디 그런가. 친환경 농업 전환 초기에는 소출은 줄고 투입 비용은 훨씬 많을 텐데, 쉽게 농사짓던 시절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세월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 그는 3천만평의 서산간척지 전체가 친환경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 주춧돌을 놓고, 자신도 서산 사람들과 어울려 농사꾼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곳곳에 위험신호가 넘쳐난다. 간척지 A지구의 담수호 간월호는 이미 5급수로 전락해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게 됐다. “준설을 하긴 해야 하는데, 골재 채취만을 노리는 업자들에게 맡기면 큰일납니다. 철새들이 계속 살 수 있게,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해야죠.” 그는 올해 농사가 끝난 뒤 친환경 농업으로 농사를 짓는 영농법인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하얀 오리떼 구경하러 서산에 오세요”

그는 지역에서 일을 하려면 지역 사람들 사이에 단단히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초 석남동 출신이 아닌 그는 한때 <석남동 사람들>이란 지역신문을 만들어 혼자서 기자도 하고, 배달부도 했다. “지역에서야 서울에서 무슨 일 났다는 것보다 뒷집 돼지 죽었다는 게 더 뉴스잖아요.” 그는 그렇게 사람을 알아갔고, 함께 일하며 신뢰를 쌓았다. 시의원으로 당선된 뒤에도 그는 석남동 영진크로바아파트 자치회장을 맡고 있다.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외벽에는 천수만 철새를 형상화한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물론 그의 아이디어다. 가창오리는 이제 내년을 기약하고 떠나갔다. 하지만 올 여름 서산간척지엔 하얀 오리떼가 새 명물로 등장할 것 같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