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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교사라서 안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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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3-03 00:00 수정 : 2008-11-2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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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강의와 교사평가제 추진에 대한 교직사회의 반응… NEIS 스트레스도 호소도

요즘 교사들이 우울하다. 스트레스도 심하다. 교육부가 새로이 밝힌 EBS 수능강의와 교사평가제가 학교 교육의 주요한 당사자인 교사들로부터 환영을 못 받고 있다. NEIS는 더욱 심한 원성의 대상이고….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교육개혁의 명분 아래 추진되고 있는 참여정부의 교육정책들이 국가 백년대계의 기반인 교직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교육부가 최근 잇따라 내놓은 사교육 대책과 교사평가제가 일선 교사들의 의견수렴 없이 졸속으로 추진된 탓이다. 교사들은 올 초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해서도 “잘못 설계된 시스템 때문에 교사가 단순 사무직원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일반사무직원처럼 취급하느냐”


지난 2월17일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이 발표된 직후 서울시 교육청과 전교조, 교총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일선 교사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교사들은 특히 EBS의 수능 강의를 수능시험에 대폭 반영하겠다는 방침에 대해 “교사들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수능 고득점을 위해 학생들이 EBS에 집중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에 학교 수업을 외면하는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전교조 관계자는 “교육부의 대책이 현실화되면 학교에서는 EBS의 강의를 해설하는 보충수업이 생겨날 것이고, 입시를 코앞에 둔 고3의 경우 정규수업시간까지 잠식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학생들에게 또 다른 보충수업 부담만 늘려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일부 ‘발빠른’ 학교들은 이번 학기부터 학생들한테 EBS 청취 감독비와 EBS용 보충수업비를 걷고 있다. 전교조 관계자는 “이는 교육부 대책이 실제로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주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선 교사들은 이번 조치가 학생들뿐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큰 상처를 줄 것이라고 지적한다. 서울 자양고의 한 교사는 “EBS에 스타 강사를 출연시키겠다고 하는데, 방송에 출연하는 강사가 스타면 나머지 학교 교사들은 모두 ‘쭉정이’란 말이냐”며 “교직 생활 20여년 동안 요즘처럼 허탈한 때가 없었던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교사는 “국가가 교사들의 수업 내용까지 획일적으로 장악할 수 있다는 발상이 깔려 있는 것 같아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며 “이번 조치가 실행되면 교사들은 단순한 ‘지식 전달자’로 전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극히 일부에선 EBS 강의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서울 경희고의 한 교사는 “교사들이 자신의 강의와 EBS의 강의를 비교하다 보면 수업의 질이 상승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교사평가제를 도입하겠다”는 안병영 교육부총리. 학교 현장을 무시하는 교육관료들의 발언은 교사들을 더욱 지치게 만들고 있다.(한겨레 김종수 기자)

교사평가제에 대한 교사들의 위기 의식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2월2일 안병영 교육부총리가 “(교사들한테서) 욕을 먹더라도 교사평가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뒤 한 교육단체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앞으로 교사는 인성교육, 인간교육 다 포기하고 장사교육을 해야 살아납니다. 장사꾼처럼 자기의 ‘상품’을 잘 팔기만 하면 되죠. 그래야 동료교사나 학부모들한테서 좋은 점수를 받을 테니까….”

교사들은 평가제도의 필요성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철저한 준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될 경우 나타날 부작용을 두려워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 교사는 “지금처럼 교장이나 재단에 줄세우기를 강요하는 형태로 이뤄진다면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며 “가뜩이나 소신 있는 행동이 어려운 사립학교의 경우 그 폐단이 더 심각해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교육자로서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는 모습을 제자들한테 보여줄까봐 두렵다”고 호소했다.

교사들은 평가의 방법이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평가의 신뢰성과 공정성이 확보되려면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부산의 한 사립고 교사는 “교사평가제가 학교 밖에서 여론을 형성해 교사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형태로 진행된다면 교사들이 큰 소외감을 느낄 것”이라며 “교사를 교육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평가와 더불어 교사들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연수제도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교사들의 연수 환경은 일반 기업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면서 일반 기업체와 비슷한 평가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전교조 소속의 한 교사는 “사교육 대책이나 교사평가제의 바탕에 교사들을 일반 사무직원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는 것 같다”며 “교사라는 직업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교사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의 정체성에 대한 혼돈은 지난 2월 중순 발생한 ‘NEIS 대란’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각급 학교별로 2003학년도 2학기 업무가 진행된 지난 2월9∼16일 일주일간 일선 교사들은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해야 했다. 학교생활기록부 정보를 NEIS에 입력하기 위해 교사들의 접속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NEIS 접속이 안 되거나 업무 속도가 크게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NEIS 접속이 자주 끊기는 바람에 학생 1명의 생활기록부를 기록하는 데 1∼2시간씩 걸리는가 하면, 아예 접속이 안 돼 집에서 새벽 시간에 접속해 일을 처리하는 교사들이 많았다. 교육부는 서버에서 많이 활용되지 않는 부분을 축소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했지만 교사들의 불편은 일선 학교의 학사 업무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NEIS 대란 때 하루종일 컴퓨터와 씨름

문제는 이처럼 교사들을 컴퓨터 앞에 붙잡아두는 현상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NEIS가 학교 업무의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설계된 탓이다. 학교 업무는 그 특성상 학기 말에 집중되기 때문에 동시에 대규모 접속이 가능하도록 설계됐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교육부도 이런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가의 주요 전산 시스템은 동시 접속자 수를 전체 사용자의 5%로 책정해 설계하지만, NEIS는 이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설계됐다”며 “이처럼 특정 기간에 접속자가 집중될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번처럼 대규모로 몰릴 줄을 몰랐다”고 털어놨다.

2 · 17 사교육 대책은 학교와 학원의 교육적 기능의 차이를 무시한 발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교사들은 공교육의 문제를 사교육과의 대응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학교가 ‘제2의 학원’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지적한다.(한겨레 윤운식 기자)
NEIS의 동시 접속자 수를 늘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정보를 집적하는 서버를 늘리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NEIS에 사용되는 서버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교육부는 섣불리 서버 증설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NEIS 구축에 이미 많은 돈이 들어갔기 때문에 서버 증설은 예산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서버 증설과 함께 일선 학교에 주별 혹은 월별로 주기적으로 정보를 입력하도록 행정지도를 병행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NEIS에 이미 54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됐기 때문에 결국 교육부의 대책은 ‘행정지도’ 중심으로 이뤄질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일선 교사들은 거의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교육부는 ‘주별 혹은 월별로’ NEIS 작업을 끝내라고 ‘지도’를 하지만, 이미 NEIS 대란을 겪어본 교사들은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매일 컴퓨터 앞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NEIS가 교육정보화 초기 시스템인 학교생활기록부 입력 프로그램(SA)이나 학교종합정보시스템(CS)에 비해 입력 항목이 지나치게 많은 것도 교사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실제로 NEIS는 수행평가의 기준과 결과를 기록하도록 돼 있는데, 한달에 한 단원씩 지도하는 초등학교 6학년의 경우 14개 과목의 수행평가를 기록하려면 한달 수업 중 절반 이상을 수행평가에 할애해야 한다.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수행평가의 결과를 그때그때 NEIS에 입력하려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붙어 있어야 가능하다”며 “이게 일반 회사원들과 다를 게 뭐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서울 영일고의 한 50대 교사는 “1990년대 중반부터 교육정보화가 진행되면서 교무실 풍경이 크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교사들이 수업이 없는 시간에 교재 연구를 하거나 책을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틈만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잡무를 보고 있다”며 “NEIS가 전면 도입된 뒤부터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진 것 같다”고 꼬집었다.

씁쓸한 입시위주의 교사평가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단순한 지식 전달자로 남기를 바라지 않는다. 제자들이 인생을 설계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세상은 이 땅의 교사들에게 더 이상 ‘기회’를 주지 않을 태세다. 교총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온 한 교사의 글은 이런 각박한 세태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아이들에게는 정겨운 친구로, 해당 분야에서는 전문가와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지식인으로, 학부모와는 미래 세대를 키워내는 동반자로, 사회의 불의 앞에서는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지사로, 일인다역을 감수해야 하는 자질을 키워야 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오로지 ‘수업’을 위한, 그것도 입시를 위한 수업만을 진행하는 ‘전문 강사’로서의 교사, 그것이 또 유능한 교사의 기준이 되는 것 같아 몹시 씁쓸합니다. 요즘처럼 교사라는 직업이 혼란스러울 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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