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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정치가 이문열/ 이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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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3-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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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교수 · 중국문학
선거철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이문열이 빈번하게 언론에 등장하는 것을 보니 그렇다. 언젠가부터 대선이든 총선이든 우리나라 선거철은 이문열의 계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그래도 예전에는 소설가 이문열이라는 신분을 통해서였다. 자신의 고백대로, 이문열이 노태우나 김영삼을 “화끈하게 밀” 때도, 그리고 결국 두번 모두 실패하고 말았지만 줄기차게 이회창을 밀 때도, 모두 글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이제는 한나라당 공천심사에도 참여하고 선거대책위원장 이야기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이제 그는 정치인이다.

‘소설가’가 선택한 생존전략

이문열의 그간 행보로 보면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이문열 하면 순수문학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반대다. 이문열 문학은 정치성이 농후하다. <영웅시대>부터 <변경> <아가> <선택>, 그리고 역사물인 <삼국지>에 이르기까지 참여문학 작가들보다도 정치성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 때로는 극우 세력과 극우 언론을 위한 싸움닭 노릇까지 자임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예전에 이문열은 ‘소설가 이문열’이라는 신분으로 ‘정치가 이문열’ 구실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명실상부해졌다. 정치가로서 이문열의 화끈한 커밍아웃이 한편으로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동안 이문열은 과거 여당의 여러 차례 공천 제의도 마다하면서, 왜 한결같이 소설가 이문열을 고집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미쳐온 것일까. 이문열 자신의 대답이 명쾌하다. “계산이 안 맞아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다.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력으로 따져봤을 때 웬만한 국회의원만큼은 되고, 의원 봉급의 수십배가 되는 소득을 올리고 있으니 굳이 정치할 이유가 없잖은가. 요즘은 문화권력이란 것을 실감하고 있다.”


소설가 이문열이라는 문화권력을 통해 정치적 권력도 행사하고 한달에 수억원씩 돈도 벌어왔기에 굳이 정치인으로 변신할 이유가 없었다는 고백이다. 한마디로 꿩 먹고 알 먹고 해온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설가라는 신분 규정 때문에 이문열의 지극히 정치적이고 당파적인 주장이 합리적이고 중립적이며 진리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마법의 위장막 구실을 톡톡히 해왔으니, 그 수지타산이 맞는 영업전략을 포기하고 정치가 이문열로 커밍아웃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정치판에 직접 뛰어들었다. 중국 문화대혁명 때처럼 이 나라의 위기가 절박해서 침몰하는 잠수함의 위기를 예보하는 토끼 노릇을 하기 위해 나섰다고 한다. 우국충정에서 나온 살신성인이라는 주장이다. 그 우국충정을 그대로 믿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소설가 이문열’이 막다른 골목에 이른 지점에서, 탈출구로서 어쩔 수 없이 ‘정치가 이문열’로 변신했고, 그동안 절대적인 문화권력을 통해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까지 행사할 수 있었던, 꿩 먹고 알 먹던 영업전략이 한계에 부딪혀서 나온 불가피한 생존전략 차원에서 정치가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처자식도 버리고 이념에 홀려 북으로 간 좌익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이문열은 작가가 될 수도, 이렇게 출세할 수도 없었다. 남의 가계의 상처를 들춰 인신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문열의 삶과 문학이 그렇고, 이런 의미에서 이문열은 분단 비극의 상징적 존재다. 북으로 간 그의 아버지는 세상에 있되 지금 여기에 없었다. 자신의 삶을 억압하는 실체이면서도 부재하는 고약하기 짝이 없는 아버지의 존재, 분단시대 특유의 비극이 이문열의 삶과 문학의 출발점이자 족쇄다.

분단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본다

이문열은 가혹한 연좌제의 족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고, 아버지를 이념적으로 죽이고, 아버지 대신 자신이 양반 가문의 적자가 되었으며, 자기 아버지가 추구했던 세상의 반대편에 놓인 권력에 맹종해왔다. 이문열의 삶과 문학이 분단문학의 한 계보를 상징하는 것은 이 때문이고, 이문열의 문학사적 의미는 여기에 있다.

이문열은 분단시대의 한 그늘을 상징한다. 그 그늘이 이문열 성장의 토대였다. 하지만 이제 이문열의 삶과 문학의 기둥이었던 분단시대가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는 분단시대 속에서 이문열의 삶과 문학이 곤경에 직면한 것이다. 그의 문화권력도 어쩔 수 없이 흔들리고 있다. 정치인으로 ‘커밍아웃’하면서까지 흔들리는 분단시대를 붙잡아 세우려고 애쓰는 이문열의 피로하고 초조한 얼굴을 보면 아직도 한반도에 남아 있는 분단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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