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통한 교육이 주입식일 수밖에 없으며 교육방송 내에서만 출제하겠다는 당국자의 발표 역시 앙큼스럽기 짝이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수십만명의 우리 아이들이 성적순으로 서울부터 부산까지 줄지어 서 있는 가당치 않은 악몽을 떨쳐버리기는 힘들다. |

류동민/ 충남대 교수 · 경제학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명제는 비단 혁명-반혁명의 과정이나 난세를 구한 영웅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 듯, 거의 4반세기가 지나 등장한 사교육 대책은, 군사정권의 힘을 빌어 과외 아르바이트로 학비 벌던 대학생까지 구속시키는 가공할 만한 물리력만 제외하면 옛날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사실 21세기가 되어도 사그라질 줄 모르고 뻗어만 가는 사교육의 광풍을 생각할 때, 오죽하면 이런 대책이 나왔겠는가라는 점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사교육을 향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열성 학부모들이 기대하는 것은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말하자면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이고, 까놓고 얘기하면 우리 아이 좋은 대학 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교육이다. 열여덟 나이에 치른, 그것도 단 한번의 객관식 위주의 시험 성적으로 최소한 인생의 10, 20년은 규정짓고 들어가는 우리 시스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결과는 학벌이나 대학서열의 폐지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더욱 공고하게 유지되는 상태에서 나(또는 내 아이)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인터넷 한겨레>를 비롯하여 학벌과 관련된 인터넷 게시판에 들어가보라. 대개 학벌사회에 대한 냉소와 야유로 시작된 글들은, 뜬금없이 학벌 피라미드에서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자들에 대한 더욱 처절한 공격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비록 A대학을 나왔지만, 너희 B대학보다 낫다는 따위의 자학적 공격은 결국 학벌사회에서 누구나 피해자일 수밖에 없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은 어디에도 없겠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수십만 수험생을 똑같은 센터시험의 결과로 일렬로 줄 세우는 통과의례는 그러한 서열의식을 가장 극적이고 일상화된 방식으로 재생산하는 기제라는 점이다. 20년 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의 벗겨진 이마 위로 어렴풋이 떠오르는 학력고사 또는 수능점수의 그림자. 이야말로 코미디가 아닌가? 국가에 의한 줄 세우기 그만두라 그러므로 텔레비전이라는 가장 일방향적인 매체를 통한 교육이 주입식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뻔한 사정이나, 교육방송 내에서만 출제하겠다는 당국자의 발표란 마치 교과서를 중심으로 착실히 공부했다는 수석 합격자들의 소감만큼이나 앙큼스럽기 짝이 없어 보인다는 사정은 제쳐놓더라도, 수십만명의 우리 아이들이 성적순으로 서울부터 부산까지 줄지어 서 있는 가당치 않은 악몽을 떨쳐버리기는 힘들다. 최근 ‘평준화 유지냐 철폐냐’ 하는 논쟁은 마치 평준화 그 자체가 지상 목표이거나 역으로 모든 문제의 원흉인 듯 몰아세우는 이데올로기를 논쟁화함으로써, 국가에 의한 줄 세우기 교육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오히려 소홀한 느낌이다. 교육 당국의 힘을 빌어 사교육을 제압하려는 시도는 문제의 해결 여부와 무관하게 교육현장에 대한 국가적 통제의 소지를 증대시킨다는 또 다른 부작용과 맞물려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소한 수십만명의 학생들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방송을 보고 그 방송에서 출제된 시험의 결과 일렬로 세워지는 기억, 우리가 갖고 있는 그 기억을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물려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