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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박종만] ‘섬 누나’는 멀리 갔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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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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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오래된 술집에는 오래된 사연들이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 있게 마련이다. 서울 신촌의 작은 술집 ‘섬’에는 좁은 탁자마다 기형도·강금실·김정환·공지영·성석제 등의 이름과 80년대를 버텨낸 젊은이들의 ‘객기’가 묻어 있다.

섬의 주인은 주인답지 않았다. 그래서 취객들은 모두 그를 ‘언니’나 ‘누나’라고 불렀다. 그에게 소줏집에서 ‘2차’를 얻어먹은 ‘동생’들(주로 빈티나는 문화예술인들)의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섬을 찾아온 사람들은 주문하는 법이 없다. 냉장고에서 각자 마실 술을 꺼내먹고 필름이 끊기기 전에 “누나, 계산해주소” 한마디 던지면 그만이었다. 아무나 흥이 나는 대로 빼곡히 꽂힌 LP판에서 추억의 노래를 찾아 틀었다. 1981년부터 그와 사람들을 이어주던 술은 결국 그의 생명을 갉아먹었다. 58살의 유향숙씨는 지난해 11월30일, 섬의 ‘단골 취객’이었던 문화평론가 이성욱씨처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이제 유씨를 기억하는 것은 유씨에게 위로받은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1983년 군에서 재대한 뒤부터 단골이 된 박종만(43)씨는 주인 잃은 섬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학생운동, 공장 투신, 카센터 주인, 인테리어 사업까지 그의 험란한 인생살이에 섬과 ‘섬 누나’는 늘 쉼표가 돼주었다. 유씨가 몸져누운 뒤부터 섬의 살림을 책임진 박씨는 유씨의 장례식이 끝난 뒤 조문객들을 섬으로 불러들여 위로했다. “누나 가족들에게 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계속 유지하도록 하자고 했더니 흔쾌히 승락해주셨어요.” 단골들은 속속 그에게 힘을 모아주었다. 한 현직 언론인은 인터넷 카페(cafe.daum.net/iloveisle)를 개설해 추억을 나눴다.

지금 섬이 있는 건물은 4월에 헐릴 예정이다. 박씨는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자본을 만들어 건물을 옮겨서라도 섬을 유지할 생각이다. 수익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주변의 독거노인을 돕는 등 좋은 일에 쓰겠다고 한다. 섬을 만든 주역 중 한명인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1천만원의 기금을 내놓으며 유씨가 사랑했던 문화예술인들을 위해 쓰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평소 “늙으면 북한산 자락에 집 짓고 살고 싶다”던 유향숙씨. 그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났으나 ‘동생’들은 아직 그를 보내기 싫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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