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조기 전당대회를 통한 대표직 이양이라는 퇴진의 길을 선택했다. 당내 여론에 밀려 불명예 퇴진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하는 최 대표의 기자회견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의 리더십을 상징하던 ‘최틀러’라는 이미지는 사라진 지 오래라는 느낌이 든다. 한나라당과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민주당도 조순형 대표 등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당내 곳곳에서 터져나와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다른 정당의 매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참모가 수억원의 ‘배달사고’를 일으킨 이인제 의원의 리더십은, 사실이라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바야흐로 리더십 ‘수난시대’에 접어든 느낌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탈권위’ 바람이 불면서 도대체 리더십은 무엇이고, 어디서 나오는 것이며, 왜 항상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는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병렬 대표는 음미해볼 대목이 많은 인물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는 한계에 이른 낡은 리더십으로 과욕을 부린 탓에 화를 자초한 것이다. 비록 야당이기는 하지만 경선을 통해 제1당의 리더가 된 최 대표가 8개월 만에 대표직을 내어놓는 수모를 당할지 누가 감히 짐작이나 했겠는가. 최 대표의 최대 실책은, 리더십이란 자기를 버리는 희생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당 위기의 책임은 이회창 전 총재에게 떠넘기고 총선 공천을 통해 친정체제 구축을 도모했으며, 총선 승리를 통한 차기 대권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그의 리더십은 모래 위에 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의 저돌적인 ‘최틀러’ 리더십으로 천하를 얻는 데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범한 셈이다.
언론계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 한 토막은 최 대표가 자신의 리더십을 어떻게 만들어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선일보> 편집국 간부로 재직하던 시절, 사내 권력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해외 특파원 발령이 나자 그는 회사 고위층과 ‘접촉’했고 불과 하루 만에 특파원 발령은 취소됐다고 한다. 당시의 백지화 인사는 훗날 그가 40대 초반에 편집국장에 오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최 대표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눈에 들어’ 12대 국회에 진출한 뒤 장관을 지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탄탄대로를 걷게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의 리더십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어준 것이라고 과소평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리더십을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 중에 ‘회사를 보고 입사했다가 상사를 보고 퇴사한다’는 말이 있다. 신입사원들이 그 회사의 현재와 미래를 보고 입사한 뒤 의욕적으로 일하려다, 리더십이 아예 없거나 잘못된 리더십을 갖춘 상사를 만나 실망과 좌절을 겪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얘기다. 회사가 됐건, 정당이 됐건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고 있다.
리더십을 발휘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최 대표를 반면교사로 삼아 리더십에 대해 곱씹어본다면, 비록 지금 이 시절이 ‘탈권위’의 혼돈 속에 있다고 해도 꼭 그렇게 썰렁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국회사진기자단
리더십을 발휘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최 대표를 반면교사로 삼아 리더십에 대해 곱씹어본다면, 비록 지금 이 시절이 ‘탈권위’의 혼돈 속에 있다고 해도 꼭 그렇게 썰렁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