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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데쥐다 셀리세바] ‘마약 유행’ 얼려버리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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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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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 글 · 사진 박현봉 전문위원 parkhb_spb@yahoo.com

러시아의 살인 추위는 널리 알려져 있다. 거리에 몇분만 서 있어도 온몸이 얼어붙는다. 맹추위에 눈발이 내리던 2월14일. 올해는 성 밸런타인데이를 축하하러 유난히 많은 젊은이들이 거리에 나섰다. 이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봉기광장’을 지나가는 젊은이들은 뭔가를 집요하게 권유하는 한 아주머니에게 시선을 꽂지 않을 수 없었다. ‘마약퇴치 범시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나데쥐다 셀리세바(37)였다.

그는 7년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의 철학부를 나와 초등학교 사회과 교사로 사회생활에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많은 어린 학생들이 마약 불감증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아연실색했다. 두 자녀를 둔 평범한 가정주부인 그는 직접 마약 근절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강한 의무감에 시달렸다. 1993년에 ‘반전, 반빈곤, 반범죄 및 반마약’을 기치로 사회운동을 펼치고 있는 시민단체에 자원해 들어갔다. 97년부터는 대학생 중심의 ‘마약퇴치 범시민 서명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거리의 행인들, 특히 젊은이들을 상대로 마약의 해악을 홍보하고 마약퇴치를 위한 서명을 받는 게 주요 임무였다. 그는 운동의 지도자로서뿐만 아니라 열성 행동대원으로 활동했다. 맑은 날이건 궂은 날이건, 혹은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고 거리에 나섰다. 주말과 휴일에도 쉬지 않았다.

“옛 소련 붕괴와 함께 가치관의 부재 현상 틈바구니에서 한때 러시아 젊은이들 사이에 코카콜라와 말버러, 청바지 등으로 대변된 서구문화는 맹목적인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서구적인 것은 무조건 좋다’는 사고방식에 젖은 일부 몰지각한 젊은이들에게 마약은 경계가 아닌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셀리세바의 탄식조의 진단이다.

“웬만한 아파트 입구에 가보면 하루가 멀다하고 마약 복용자들이 버린 1회용 주삿바늘이 수북이 쌓인다”고 주장하는 그는 마약 복용자의 연령이 점점 더, 그것도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그가 처음 자원봉사자로 시민운동에 뛰어들었을 당시는 대개 중등과정 이상의 학생들 사이에서 마약이 성행했으나, 요즘은 초등과정 학생들 사이에서도 마약이 최신 유행 신제품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약이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급속히 확산되는 것은 ‘돈을 버는 데만 눈이 먼’ 상인들 때문이다. “일부 파렴치한 어른들이 처음에는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들에게 무료로 마약을 제공한 뒤 결국에는 단골 고객으로 만드는 야비한 상술을 발휘하고 있다”는 셀리세바는 마약과 죽음의 상인들을 완전히 퇴치하는 그날까지 거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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