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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필립 부카일로비치] 대자보 붙이는 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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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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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로비차(코소보)= 글 · 사진 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teledomenet.gr

“민족주의라는 말이 케케묵은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현재 세르비아의 상황을 타개하는 길은 민족주의밖에 없어요.”

세르비아의 오늘을 걱정하는 그는 다름 아닌 세르비아 최고의 핵물리학자 필립 부카일로비치(62) 박사이다. 연구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그가 2년 전 세르비아급진당에 몸담기 시작하면서 정치 일선으로 뛰어들었다. 60을 넘긴 나이지만 그의 왕성한 활동은 젊은이들 못지않다. 지난 연말 총선 때는 젊은 당원들, 학생들과 함께 풀통을 들고 차가운 눈보라가 내리치는 베오그라드 거리에 벽보를 붙이고 다녔다. “벽보 작업은 하면 할수록 신났다”는 그는 지금도 나이의 때가 묻지 않았다.

핵과학연구소 교수로 35년간 재직하면서 언제나 바른 말을 하는 바람에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밀로셰비치가 권좌에 있던 1998년에는 과학기술에 대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해 1년 반 동안을 정직당한 경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헤이그에서 전범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밀로셰비치를 변호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지금 헤이그에서 진행되는 전범 재판은 미국과 유럽의 유고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쇼”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학계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핵물리학자인 그의 이런 대담한 행동은 많은 사람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는 지난해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이라크대사관으로 찾아가 사담 후세인의 대형 사진을 얻어와서는 자신의 자동차에 붙인 뒤 한달 동안 베오그라드시를 돌면서 미국의 침공에 항의하는 자동차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현재 다수당이 된 세르비아급진당에서 앞으로 정권을 잡을 경우 과학기술부 장관 후보 1순위로 꼽히고 있다.


그는 냉전 당시 소련의 모스크바와 미국의 시카고를 오가며 핵 관련 연구와 강의를 할 정도로 학자로서 널리 인정을 받았다.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목적이 에너지 공급 차원이라고 둘러대지만, 사실은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 건설됐다.” 냉전 때 미-소간의 무기 경쟁이 핵무기 건설을 부추겼으며, 이 때문에 세르비아의 여러 곳에 핵발전소가 들어서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의 부안에서 커다란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핵폐기장 문제의 해결에 대한 견해도 내놓았다. “핵폐기물은 처리가 불가능해서 오염 위험이 엄청나게 높다. 한 가지 해결 방법은 이를 우주공간으로 날려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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