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김한규] “고구려는 한국도 중국도 아니었다”

497
등록 : 2004-02-18 00:00 수정 :

크게 작게

연합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김한규(54)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학계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학자 중 한명이다.

최근 그가 새로 내놓은 책 <요동사> 역시 출간 전부터 일부 한국사 연구자들의 집중 포화를 맞기도 했다. “고구려인은 중국인이나 한국인과 생활공간이 달랐고, 역사의식이나 문화양식, 언어, 역사적 경험들이 달랐다. 고구려·요·금·원·청 등 요동(遼東)의 역사는 중국이나 한국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역사 공동체였다”는 그의 주장이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한 반감으로 한껏 고조된 민족주의적 정서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의 역사학의 핵심은 동아시아 안의 다양한 역사 공동체- 한국·중국·티베트·만주의 여러 국가들- 가 오늘날의 민족국가나 국경선으로 재단할 수 없는 고유의 역사를 가지고, 주변과 교류하며 유기적으로 전통시대의 동아시아를 구성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만주’ ‘요동’이라 불리는 현재 중국의 동북지방은 전통적으로 한국의 일부도 중국의 일부도 아니었고, 고구려는 바로 이 요동이라는 제3의 영역에서 건립된 국가였다고 주장한다. 742쪽에 이르는 방대한 연구서인 <요동사>에서 그는 한-중 두 나라의 일차 사료, 여러 민족지, 한·중·일·러시아의 방대한 논문들을 해석하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김 교수는 요동이 한국과 중국사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는 것은 강조하지만, 현재의 한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민국가 틀에서 역사를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고구려와 발해, 고조선, 부여를 ‘한국사 영역’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라며 비판을 받았고, 중국에서는 자칫 ‘요동 독립운동’으로 번질 수 있는 주장으로 맹비난을 받았다. <요동사>의 전편 격인 <한중관계사>(1999)는 한국에서 출판이 2년이나 미뤄졌고, 중국이 먼저 요청해 중국어로 번역됐지만 “제국주의 침략에 복무하고 민족분열주의의 주장을 위한 것’으로 비난받아 출간할 수 없었다.

김 교수는 “비난을 예상하고 <요동사>의 출간을 끝내 결심하게 된 것은 최근 한국과 중국 역사학계가 보여주는 민족주의, 애국주의적 학문 경향의 폐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며, 학문이 정치와 현실로부터 해방되어 그 순수성을 보존할 수 있기 바란다”고 말한다. 만약 1500년 전 고구려인이 우리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까?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