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대학생 당원 ‘눈에 띄네’

496
등록 : 2004-02-12 00:00 수정 : 2008-11-28 16:08

크게 작게

민주노동당 이어 제도권 정당조직도 등장… 유세단 · 자생적 모임 · 모니터단 등 활동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4월까지는 총선에 주력해야 해.” “사람들 시선을 확 끌 만한 선거운동은 없을까?” “당원을 100명까지만 늘리면 좋겠는데….”

앳된 얼굴의 대학생 입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들이 예사롭지 않다. 총선, 선거운동, 당원 등 정당의 지구당 회의에서나 나옴직한 대화가 아무렇지 않게 오고 간다. 지난 2월7일 오후 서울 이화여대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이대지부 회의에서는 10여명의 당원들이 모여 상반기 사업계획과 총선 계획을 놓고 머리를 맞댔다.

최근 정당 가입을 통해 현실정치에 개입하려는 대학생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지난 2월7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이대지부 회의 모습.(박승화 기자)
정당정치가 활발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당원’이라는 단어는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정당의 정책이나 강령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운용되는 정치풍토에서 특정 정당에 가입했다는 ‘고백’은 ‘돈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거나, ‘출세욕이 과한 게 아니냐’는 눈총을 받기 일쑤다.


현실정치에 개입하려는 공세적 태도

하지만 최근 대학가에서는 정당 가입을 통해 현실정치에 개입하겠다는 움직임이 조금씩 일고 있다. 외부자로서 감시하고 비판한다는, 다소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당원으로서 정치 지형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공세적인 태도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정치참여가 활발한 정당은 역시 민주노동당이다. ‘진보세력의 정치세력화’를 내걸고 지난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 8.2%의 정당지지율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해, 당시 자민련을 제치고 제3당으로 올라섰다. 당원 대부분이 20~40대로서, 비교적 젊은 조직인 민노당의 든든한 발판은 전체 당원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대학생 당원들이다.

지난해 3월 공식 출범한 민노당 학생위원회는 현재 전국 50여개 지부에 3천여명의 당원들이 활동 중이다. 하지만 이미 학생위원회라는 이름이 붙기 이전부터 각 학교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학생당원들은 2000년 여름 1500명에서 올 2월에는 3천여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2002년 대선에서 대학생 당원들은 권영길 후보의 중앙유세단을 구성해 권 후보와 함께 전국을 순회했다. 아르바이트 ‘아줌마·아저씨’가 많았던 다른 후보 진영과 가장 차별되는 모습이었다. 중앙유세단이 전국을 순회하는 동안, 각 지방에서는 ‘광역지부 유세단’이 꾸려져 중앙유세단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동시에 별도의 활발한 선거운동을 벌였다.

독특하고 발랄한 율동과 노래로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이들 학생당원은 올해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비상 체제’에 들어섰다. 당을 보고 투표해 그 득표율에 따라 비례직 국회의원이 탄생하는 ‘1인2표제’가 실시되는 최초의 총선이라는 점은 민노당 학생당원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한다. 활동하기에 따라 정당 또는 후보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회의에서 총선이 가장 큰 ‘화두’가 되는 이유다.

일상적 정치활동… “변화의 주체 되련다”

하지만 학생위원회가 선거 때만 ‘반짝’하는 조직은 아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과 파병반대 등 전 사회적인 사안에 적극 결합하는 것은 물론,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당의 정책을 지지한다. 김지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장은 “대학생들 사이에 정치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어, 당을 알리고 정책을 홍보하는 일이 만만치 않지만, 지난 1월 열었던 대중정치 강좌에 당원이 아닌 일반 학생들까지 모두 600~700명이 모여든 것을 보고 희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대학생 당원들은 요즘 총선관련 활동에 주력하지만, 평상시에도 ‘일상의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있다.(류우종 기자)
이른바 ‘제도권 정당’에서도 대학생들의 활약은 눈길을 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최근 학생위원회 준비위원회 모임이 활발하다. 경희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각 학교에서 자생적으로 꾸려진 당원 소모임을 당 산하의 어엿한 조직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다.

열린우리당에는 개혁국민정당 학생위원회에 뿌리를 둔 100여명의 대학생 당원들이 있다. 2002년 당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활동했던 개혁당 학생위원회는 당시 1천여명의 대학생들이 당원으로 가입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지만, 개혁당이 열린우리당으로 ‘통합’되면서 많은 대학생들이 탈당한 상태다. 당원의 수가 줄어든 대신 당을 향한 ‘애정’의 농도는 더욱 짙어져, 100여명 가운데 70여명이 학생위원회 조직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주위 사람을 정당에 가입하도록 권유하는 것은 물론, 총선의 ‘주체적 활동’을 위해 여러 아이디어도 고민 중이다. 그렇다고 열린우리당의 대학생 당원이 모두 개혁당 출신은 아니다.

새내기 당원 심재민(22)씨는 “변화의 주체가 되고 싶다”며 지난 1월 열린우리당의 문을 두드렸다. “정치에 관심도 없었고, 관심을 갖고 싶은 생각도 없던” 심씨의 마음이 조금씩 달라진 것은, 지난해 말 열린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선거에 뛰어들면서부터다. 선거에 도전한 선배의 요청으로 선거운동에 합류했던 심씨는 “참여를 통해 정치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열린우리당의 학생조직은 ‘일상의 정치’를 실현해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개혁당 서울시지부 학생위원장 출신으로, 최근에는 열린우리당 학생위원회 준비에 힘을 쏟고 있는 안지훈(25)씨는 “예전에는 선거가 끝나면 이슈가 없어서 다른 사회적 의제에 묻어가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대학운영위원회에 학생 30% 참여를 법제화하는 운동을 벌이는 등 우리당 학생위원회 명의로 적극적인 활동을 벌일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의 경우 학생들의 자생적인 모임은 없지만, 당 차원에서 대학생 당원 40여명으로 구성된 청년 모니터단과 청년 사이버 부대변인 제도를 운영 중이다. 지난 대선 당시 인터넷 공모를 통해 ‘발탁’된 이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돌며 사회적 분위기를 당에 전해주거나 홍보글을 퍼나르는 등 주로 온라인에서 활동한다. 한나라당은 또 ‘대학생을 위한 정치강좌’와 ‘대학생 정당견학’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학생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대학생들은 워낙 정치에 관심이 없지만, 자체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집단”이라며 “앞으로 맥주파티나 피자파티 등 이벤트를 통해 대학생들을 직접 만나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학생의 정치활동에는 여전히 장애물이 남아 있다. 일부의 곱지 않은 시선은 그렇다 쳐도, 아직 많은 대학들이 ‘정치활동 금지’ ‘정당가입 금지’ 등을 학칙에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경기도의 ㄷ대와 ㅎ대에서는 지난해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명의의 대자보를 학교쪽이 강제로 철거해 학생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관계자는 “과거 군부독재 시절, 대학생들의 학내 시위를 막기위해 정해놓은 학칙이 여전히 많은 학교에 남아 있다”며 “당 차원에서 문제제기를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참신한 활동임에도 학칙 위배 등 걸림돌

학생당원들이 건전한 정치적 논의의 장을 대학 안으로 끌어올지, ‘선거용 소모품’으로 전락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젊은 층의 정치적 무관심 확대와 투표율 저조를 우려하는 이들에게, 대학생 당원들의 활약은 적어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는 “학생당원의 증가는 청년층의 정치참여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며 “정치를 젊고 신선하게 이끌어갈 사람들을 배출해내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낙관했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