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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저승사자도 차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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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2-11 00:00 수정 : 2008-11-2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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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경제적 능력에 따른 ‘사망 불평등’ 심각… 저소득 계층은 평생에 걸쳐 건강 위험에 놓여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가난한 사람은 부자보다 더 빨리 죽는다? 의료서비스 혜택 등에 차이가 있으므로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사망비율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본 연구자료는 흔치 않다. 오히려 사람은 누구나 죽을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에 비록 삶이 불평등하더라도 죽음은 평등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일러스트레이션/ 황은아
이런 점에서 ‘한국노동패널 학술대회’(2월11일)에서 발표되는 강영호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예방의학교실)의 연구는 매우 흥미롭다. 강 교수의 ‘사망률에서의 사회경제적 불평등’ 보고서(한국노동연구원의 1998년 한국노동패널 1차조사 당시 30∼69살의 남녀 8415명과 이들 중 2002년까지 사망한 125명을 추적조사)를 보자.

가난도 서러운데 교통사고도 많이 당해


보고서에 따르면, 고졸 미만 학력자가 고졸 이상 학력자보다 1.90배 사망 위험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성인기의 사회경제적 지위(교육수준·직업·소득수준)에 따라 사망비율에 뚜렷한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직업에 따른 사회계층의 분류상 ‘하류계급’과 ‘농촌하류계급’의 사망 위험은 다른 사회계층에 비해 각각 1.67배, 1.54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직업을 육체노동자와 비육체노동자로 나누었을 때도 육체노동자의 사망률이 1.57배 더 높았다.

소득 수준 측면에서 보더라도 하위소득 계층의 사망률은 상위 계층보다 1.62배 높았고,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고 응답한 가구의 구성원들은 경제적 어려움이 ‘없다’고 응답한 가구원보다 사망 위험이 1.83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객관적인 월 소득지표 외에 부동산·저축·부채 등 부의 모든 측면을 감안했을 때 사망률의 차이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일반인들한테는 다소 낯설지만 ‘사망 불평등’은 요즘 의학계 한쪽에서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는 주제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사망 위험이 더 높아진다는 것인데, 여기서 사망 원인으로는 질병·사고·노환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런데 질병에 의한 사망률은 의료서비스의 접근이 떨어지는 저소득 계층일수록 높다고 할 수 있지만, 교통사고 등 우발적 사고에 의한 사망 역시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일까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교통사고 사망의 경우 우연적으로 재수 없이 당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구조적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며 “전 세계적으로 질병 못지않게 외부 요인에 따른 사망률의 불평등도 아주 심한 편”이라고 말했다.

교육 및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교통사고에 노출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사회경제적 배경이 낮을수록 돈 벌러 바깥으로 돌아다녀야 함에 따라 교통수단을 많이 이용하게 된다. 또 안전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사회계층이 낮을수록 교통사고로 인한 치명률도 높고, 산업재해도 육체노동자한테 더 많이 발생한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우발적 사고에 의한 사망 확률이 높다는 것이 의학계에서는 결코 뜻밖의 사실이 아니다.

가난은 높은 사망률도 대물림한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능력은 신생아 사망률에도 깊은 영향을 끼친다.(박승화 기자)
손미아 강원대 의과대학 교수(예방의학교실)의 ‘직업, 교육 수준 그리고 물질적 결핍이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자료: 1995년 총인구조사 중 20∼64살의 남녀 1692만여명 및 통계청의 1993∼97년 20∼64살의 사망자 28만7천명)는 ‘교육 수준’에 따른 사망률 불평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나이 남자의 경우 대졸자의 사망위험 비율이 1.0일 때 고졸자는 1.68배, 중졸은 3.29배, 초등학교 졸업자는 5.11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남자 육체노동자의 사망위험 비율은 비육체노동자에 비해 1.65배 더 높고, 물질적 결핍이 가장 심한 집단이 덜한 집단에 비해 남자는 2.44배, 여자는 1.94배 더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손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교육에 따른 사망의 상대적 위험률은 서구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높게 나타난다”며 “사망 불평등에서 직업보다 교육 수준의 효과가 더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교육이 사회계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육 수준에 따른 사망 불평등은 점차 증가하는 것일까, 감소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인구센서스 자료(1990·1995·2000)와 그 뒤 1년 동안의 사망자료를 조사한 결과 교육 수준에 따른 사망 불평등은 증가 추세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졸 이상의 남성(35∼64살) 사망확률을 1.0이라고 했을 때 지난 1990년에 중·고졸의 사망률은 1.7, 초등학교 졸업은 3.5, 무학자는 2.9였는데, 2000년에는 중·고졸 2.0, 초등학교졸업 3.9, 무학자 3.3으로 모두 높아진 것이다. 이에 따라 상대불평등 지표는 지난 1990년 4.1에서 2000년 4.7로 증가했다. 이는 가상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학력이 가장 낮은 사람과 가장 높은 사람간의 사망률이 4.7배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물론 교육 수준이 대체로 낮은 나이 든 성인은 사망확률이 높은 반면, 교육 수준이 높은 젊은 성인은 사망확률이 낮기 때문에 사망률 차이가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꽤 놀라운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질환별로 사망 불평등을 따져본 연구도 있다. 송윤미 삼성서울병원 교수(가정의학과)가 공무원·교직원 의료보험 피보험자 중 30∼64살의 남성(76만여명)의 사망 여부와 사망 원인을 5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월 소득 수준이 가장 낮은 집단은 가장 높은 집단에 비해 사망 위험이 2.07배 높았다. 또 암에 의한 사망 위험은 소득 수준이 가장 낮은 집단이 가장 높은 집단에 견줘 1.5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불평등은 지속된다

강영호 교수는 “결핵·뇌졸중·위암·간질환·간암 등은 영유아기의 사회경제적 환경이 낮을수록 질환이 더 많이 발생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아동기의 환경이 질병 발생과 사망에 큰 영향을 주는 이들 질병에 따른 사망 비중이 외국에 비해 크다”고 말했다.

더 주목할 만한 건 어릴 적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성인이 되어서도 전 생애에 걸쳐 누적적으로 사망 불평등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강 교수에 따르면, 아버지의 학력과 본인의 학력이 모두 고졸 미만이면 어느 한쪽은 고졸 이상인 경우에 비해 사망 위험이 2.05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교육·직업·소득을 포함해 부모의 전반적인 사회계층이 낮을수록 그 사람의 사망 위험은 다른 집단에 비해 60∼73% 정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질병의 경우 생애에 걸쳐 위험요인이 누적되면서 건강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부모의 사회경제적 상태가 출생아의 사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보고도 있다. 손미아 교수에 따르면 1995∼2001년 조기사망(출생 뒤 5년 이내)으로 통계청에 등록된 1만4607여명을 대상으로 부모의 교육 수준과 직업을 분석한 결과, 아버지의 교육 수준이 아이의 조기 사망에 미치는 영향은 대학 이상을 1.0으로 봤을 때 고등학교 1.42, 중학교 2.42, 초등학교 3.41, 무학 4.64로 분석됐다. 또 아버지가 육체노동자일 때 출생아의 조기사망률은 비육체노동자에 비해 1.57배 더 높았다. 손 교수는 “경제위기 이후 부모의 교육 수준에 따라 아이의 조기사망률이 증가하는 뚜렷한 흐름을 보여준다”며 “아이의 건강 및 사망 불평등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가 속한 사회계층에 따라 발생한다”고 말했다.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불평등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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