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정애/ 평화여성회 국방팀장
이 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 그래서 여성을 위한 입법이 국회에서 절반을 차지해야 하는 건 상식이건만 그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 우리나라의 국회이다. 한 모임에서 만난 야당 여성 국회의원은 도대체가 여성을 위한 입법이 되질 않는다며 여성 국회의원의 절대 확보를 호소했다. 알량하게나마 있는 여성 국회의원들도 남자 중심의 정당 문제에 함몰되어 입법은커녕 여성만의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모일 시간조차 없단다. 많은 사람들이 다원주의 시대, 가치의 다양화와 생명의 존엄성을 이야기하고, 이것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수직적이고 위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남성 위주의 질서를 강요받고 있으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여성의 특유가치인 ‘돌봄과 보살핌’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보호자=국가=아버지 또는 남편=신중함’으로 표현되는 남성상에 비해 ‘피보호자=시민=어머니 또는 부인=철없음’으로 여성상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여성을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현실감각과 책임감이 없는 철부지로 묘사한다. 여기서 보호자인 국가는 전쟁을 수행하는 주체로, 여성은 그 전쟁을 받아들여야 하는 객체로 설정된다. 그러나 누가 전쟁을 용인했는가? 대부분의 여성은 전쟁을 원치 않는다(극히 예외가 있음도 이해하시라. 마거릿 대처나 곤돌리자 라이스, 그리고 극단적인 파병 예찬론자로 한동안 매스컴의 화려한 조명을 받은 우리나라 한 연구원 등 예외적인 인물들은 ‘예외 없는 법칙이 없다’는 변으로 대신할 수밖에). 코스타리카의 경우 1948년 이후 군대를 갖지 않았음에도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현실주의의 명제가 무의미함을 의미하며, 따라서 국제정치 문제는 무기가 없이도 해결될 수 있음을 뜻한다. 누가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외치는가? 여성은 전쟁을 원치 않는다 이 세상에 ‘정당한 전쟁’이란 없다. 전쟁의 명분이 아무리 도덕적이라 해도 그 도덕성은 부식되고 끝내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규칙이 되며, 곧 공정함 따위는 문제삼지 않는 무차별적인 복수로 이어지고 마는 것이 전쟁의 속성이다. ‘무자비한 파시즘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기치를 내세운 연합군의 제2차 세계대전 수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쟁은 부와 권력을 지닌 남성 중심의 지배 엘리트 논리이다. 여성들이 정치판에 주류 세력으로 등장하면 전쟁이 아닌 평화를, 주먹이 아닌 대화를 우선할 것이다. 봄이 멀지 않았다. 무채색의 여의도- 재미와 감동을 주지 못하는 정치판, 이전투구와 부정부패와 권모술수와 편견과 아집이 판치는 세상, 마키아벨리 숭배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찾아 어지러이 굿판을 벌이는 곳- 를 화사한 연분홍빛으로 물들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