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 실현하는 아마추어 활동가로 변신… 비장애인의 관심 촉구·극장 장애인석 마련에 한몫
강원래는 이날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가 주최한 장애인스키캠프에 참가했다. 이날 행사는 그가 척추장애인이 된 이후 두 번째 참가하는 장애인을 위한 공식 행사였다. 첫번째 행사는 지난 2002년 부산아태장애인경기대회 폐막식이었다. 그는 이번 스키캠프에 참가한 80여명의 장애인들과 함께 눈밭에서 넘어지고 뒹굴면서 즐거움을 나눴다. 스키 강습이 끝난 뒤에는 참가자들과 일일이 어깨를 부여잡고 악수를 나누며 진한 동료애를 나누기도 했다.
스키캠프에서 넘어지고 뒹굴면서…
그는 지난 2000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이후 한동안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했다고 한다. 갑작스레 찾아온 신체적 장애와 환경 변화에 따른 충격 때문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춤이에요. 그런데 그 일을 앞으로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고요.” 강원래는 사고로 장애를 입은 ‘중도 장애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장애를 겪고 있었다. 낙천적이고 활달했던 그의 성격은 폭력적으로 변했다. 애인 김송(32)씨에게 폭언을 퍼붓는 일이 잦았고 병실에서 주사기를 뽑아던지며 간호사와 싸우기도 했다. 김송씨의 극진한 보살핌이 없었다면 절망의 굴레에서 영영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방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병문안을 오신 아버지가 ‘휠체어는 네가 평생 타야 할 거니까 좋은 걸로 장만해야겠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때 문뜩 깨달았죠. 아, 나만 과거에 집착하고 있구나….” 심리적 장애를 극복한 강원래의 재활은 매우 빠르게 진행됐다. 그는 병원의 혹독한 재활 프로그램을 훌륭하게 소화한 뒤 2001년 6월 퇴원했다. 다른 장애인들에 비해 6개월∼1년 정도 빠른 것이었다. 하지만 사회에 대한 적응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당장 바깥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눈앞이 캄캄했죠. 가령 하반신을 못 쓰는데 대소변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교통수단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뭐 이런 게 나한테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강원래가 언제 가요계에 복귀할까’ 이런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죠.”
그를 이용해 ‘한몫 잡아보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병원에 있을 때 온갖 기치료는 다 받아봤어요. 무슨 도사라는 사람들이, 제가 싫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와서 치료를 하겠다는 거예요. 또 각종 사설 복지단체 사람들도 많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진심으로 장애인을 위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 지금도 궁금해요.” 하지만 인터넷에서 만난 장애인동호회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강원래에게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섬세하고 자상하게 가르쳐줬다. 모두들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과거의 쓰라린 경험과 아픈 기억까지 되살려가며 삶의 지혜를 전달해주려는 이들도 많았다.
‘휠체어 카페’의 꿈… 활발한 연예계 활동
“장애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남들이 불쌍하게 보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장애인을 위해준답시고 우리가 곤혹스러워하는 일을 많이 저지릅니다.” 강원래도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에게 곤란한 일을 많이 당했다. “한번은 송이와 함께 산책을 가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갑자기 휠체어를 붙잡았어요. 그때는 허리힘이 약할 때여서 갑자기 휠체어가 멈추면 넘어질 위험이 있었는데….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미안하다는 말씀도 안 하시고 뒤따라온 분들께 ‘강원래 맞잖아’하고 측은하게 보시더라고요.”
강원래는 세상 사람들이 장애인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장애인들이 더 많이 세상 사람들 앞에 나서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택한 것이 단체 영화 관람이었다. 그는 장애인동호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서울 시내 영화관을 누비고 다녔다. 실제로 영화 관람을 해보니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영화관 입구에서부터 극장 화장실까지 장애물투성이였다. 우리 사회는 아직 장애인들이 일반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강원래는 꿋꿋하게 단체 영화 관람을 강행했다. 영화를 보다가 팝콘을 너무 많이 먹어 옷에다 ‘실례’를 한 적도 있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덕분에 이제는 강원래와 그의 친구들을 위해 별도의 장애인석을 마련해주는 영화관도 생겼다.
강원래의 작은 꿈은 ‘휠체어 카페’를 만드는 것이다. “1층은 의자는 없고 테이블만 있고, 2층은 천장을 낮추고 의자를 전부 휠체어로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1층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2층은 일반 사람들이 이용하게 하는 거죠. 그러면 일반 사람들은 휠체어의 불편함을 체험할 수 있게 되니까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겁니다. 이런 카페 차리려면 돈이 좀 많이 들겠죠?” 그래서일까. 그는 최근 왕성한 연예계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말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로 캐스팅된 것을 계기로 많은 방송에 출연하고 있고, 최근에는 유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애인 김송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프로 활동가로 나서지 않는 까닭
강원래는 장애인 인권운동의 ‘아마추어 활동가’였다. 지난 2년 동안 장애인 동호회원들과 직접 거리를 활보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가 유명 연예인이라는 사실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을 깨뜨리는 데 큰 구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장애인 인권운동 단체 등에서 일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예전에 인권운동 하시는 분들이 같이 일하자고 제안하셨는데 거절했어요. 내가 장애인에 대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선뜻 나설 수가 없겠더라고요. 또 오랜 기간 장애인 인권을 위해 운동해오신 분들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도 들고. 저는 1980년대 초반 지하철 삯이 110원 할 때 타본 이후로는 단 한번도 지하철을 이용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 제가 장애인의 지하철 이동권 운운하면 그게 과연 얼마나 호소력이 있겠습니까.” “저는 우선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내가 잘 먹고 잘 살면 ‘아, 강원래도 잘 사는구나. 장애인이 돼서 집안에만 처박혀 있는 줄 알았더니 꿋꿋하게 자기 일 하면서 잘 사는구나’ 이런 걸 사람들한테 전달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 저를 보고 다른 장애인분들도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겠어요?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시선도 달라질 것이고….”
그러나 그는 ‘프로 활동가’의 길을 완전히 닫아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장애인으로서 정말 억울하고 열받는 일이 쌓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길거리에 나가서 구호를 외칠지도 모르겠어요. 그때 혹 다시 만나게 되면 ‘제 딴소리 하고 있네’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웃음)”
장애인 인권을 실현하는 아마추어 활동가로 변신한 강원래씨를 만나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를 들었다. 비장애인의 관심을 촉구하며 극장 장애인석 마련에도 한몫했다는데…. |
평창= 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을 경험해본 탓일까. ‘클론’의 전 멤버 강원래(35)는 한층 성숙해 있었다. 지난 2월2일 강원도 평창의 한 스키장에서 만난 강원래는 예전의 춤과 노래만 잘하는 ‘반짝 스타’가 아니었다. 그는 틈만 나면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에게 장애인의 어려움을 얘기하고 이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인권운동가’로 변해 있었다.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클론의 전 멤버 강원래씨. 그는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서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려고 한다.
그는 지난 2000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이후 한동안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했다고 한다. 갑작스레 찾아온 신체적 장애와 환경 변화에 따른 충격 때문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춤이에요. 그런데 그 일을 앞으로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고요.” 강원래는 사고로 장애를 입은 ‘중도 장애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장애를 겪고 있었다. 낙천적이고 활달했던 그의 성격은 폭력적으로 변했다. 애인 김송(32)씨에게 폭언을 퍼붓는 일이 잦았고 병실에서 주사기를 뽑아던지며 간호사와 싸우기도 했다. 김송씨의 극진한 보살핌이 없었다면 절망의 굴레에서 영영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장애는 있어도 장벽은 없다.” 강원래씨가 지난 2월2일 강원도의 한 스키장에서 열린 스키캠프에 참여해 휠체어 스키를 타고 있다.

강원래 · 김송 커플은 지난해 10월 결혼식을 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