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노동자에게 판매가격 15~30%를 돌려주는 대안무역… ‘세계상표’로 국제시장에 개입한다
뭄바이= 글 · 사진 이행순 ‘아름다운 가게’ 대안무역국 간사
paran@beautifulstore.org 두세평 될까말까한 회색 천막들이 간신히 하늘만 가린 채 다닥다닥 붙어 있다. 얼핏 안을 들여다보니 노인들이 변변한 이불 하나 없이 흙바닥에 누워 있다. 웃음을 잃은 어린이들은 초점 없는 눈으로 이방인을 바라본다. 악착같이 플라스틱을 모으는 사람들
세계사회포럼이 열리던 1월17일, ‘대안무역’ 단체인 국제대안무역협회(IFTA) 관계자들과 함께 인도 뭄바이의 ‘다라비’(Dharavi) 지역을 찾았다. 이곳은 30만명의 빈민이 모여사는 세계 최대의 빈민촌이다.
‘아름다운 가게’에서도 제3세계 생산자에게 합당한 이익을 보장해주는 대안무역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은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대안무역 단체로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
인솔자 아심이 빈민촌 입구에 들어서기 직전 몇 가지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일부 몰지각한 관광객들이 함부로 사진을 찍어 파는 일이 종종 있어 주민들을 자극한다고 했다. 사진 촬영을 자제해달라는 말이었다. 길이 아주 좁고 울퉁불퉁하니 조심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한 사람씩 일렬로 서서 좁고 어두운 흙길을 따라 들어갔다. 집처럼 보이는 곳도 있고, 창고처럼 보이는 곳도 있었다. 그 중 한곳에선 두어명이 흙바닥에 주저앉아 뭔가를 열심히 만지고 있었다. 10대 소년 둘이 주사기를 산더미처럼 양쪽에 쌓아놓고 주삿바늘을 플라스틱 본체에서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떤 환자에게 사용됐는지도 모를 주사기였다. 주삿바늘에 찔리면 치명적인 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우려를 아심에게 전했다. 그러자 그는 “이 일을 적어도 10년 이상 했지만, 한번도 다치거나 병에 걸린 적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소년들처럼 이곳 주민들이 ‘악착같이’ 플라스틱을 모으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활용’ 때문이다. 아심은 우리를 빈민촌 안에 자리한 한 공장으로 안내했다. 다라비 주민이 ‘총동원’돼 길의 쓰레기더미에서 각종 플라스틱 제품을 모아오면, 우선 잘게 부순 뒤 국수가락 같은 검붉은 재활용 플라스틱을 뽑아낸다고 한다. 이것을 쌀알보다 조금 큰 크기로 잘라 1차 완성품을 만들어 외부의 공장에 납품하면, 병뚜껑, 철제 옷걸이의 커버 등 다양한 제품의 재료로 쓰인다.
특이한 점은 그 작업장 어디에서도 여성들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인도는 여전히 계급과 가부장적 인습이 지배하는 사회다. ‘가장’인 남편이 없는 여성은 돈을 벌 방법이 없어, 사회의 최하층으로 낙오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문맹률이 50% 가까운 인도에서 여성의 직업은 한정적이고 전문기술이 없는 여성의 취업은 생각조차 힘들어,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거리를 방황하며 구걸을 할 수밖에 없다. 그제야 길에서 본 수많은 부랑자들이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가난한 이들이 모여사는 빈민촌에서조차 여성은 소외되어 있었다.
하지만 친환경적 요소를 중요시하는 원칙 때문에 대안무역 단체에서는 이곳 다라비에서 생산된 재활용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다. 다만 이곳 빈민가 사람들의 생활개선 프로그램과 어린이 교육사업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원할 뿐이다.
다라비 방문은 이들이 자체적으로 생각해낸 플라스틱 재활용을 벗어나, 좀더 친환경적이면서 자립기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했다.
‘창조적 수공예품’이 보여주는 희망
대안무역 단체들이 소리 높여 외치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 대답을 ‘창조적 수공예품’(Creative Handicrafts)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드는 한 공동체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은 이자벨 마틴이라는 스페인 수녀가 여성들이 스스로 그룹을 형성하여 물건을 생산하고 그 수익을 공정히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몇년 전만 해도 다라비 지역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빈민촌을 형성했지만, 이제는 여성에게 수공예 기술을 가르치며 자립 기반을 닦아 ‘살 만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자벨 수녀는 “자본과 기술이 없는 여성에게, 그리고 가정과 육아를 돌보아야 하는 처지에 가정에서 떨어진 작업장으로 출퇴근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며 “가정에서 혹은 가정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작업장에서 수공예품 생산 작업을 가르치고 제품을 생산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마을의 몇곳에 분산된 공동 작업장에서 여성들이 봉제인형을 비롯해 옷·가방·식탁보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냈고, 작업장 근처의 탁아방과 공부방에서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들이 만든 제품은 영국과 일본, 미국 등 6개국으로 수출돼 일정한 수입을 이들에게 보장해준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늘 피해를 보는 여성의 이중고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만성적 가난에서 벗어나 안정적 수입을 보장해주는 것, 나아가 인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대안무역이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제3세계 생산자들은 판매가격의 1%에 지나지 않는 대가만 받은 채, 빈곤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러 중개인과 단계를 거치면서 실제 이익은 중간 상인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대안무역은 판매가격의 15~30%를 물건을 직접 생산한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돌려주자는 운동이다.
세계 60여개국의 대안무역 관련업체들로 구성된 국제대안무역협회는 올해 1월16일부터 21일까지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세계상표’ 인증을 수여하는 방식으로 대안무역 ‘시장’에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제3세계 생산자를 보호한다는 의미의 대안무역은 조금씩 알려지고 있지만, 실제 생산자에게 얼마만큼 이익이 돌아가는지, 소비자에게 대안무역 상품의 질을 담보하는 작업은 그동안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인간적 상품,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국제대안무역협회의 캐롤 윌스 대표는 “저소득층이 대부분인 제3세계 생산단체들이 세계 시장에 나와 이름을 조금이라도 알리려면, 1년에 약 1만2천유로(약 1560만원)를 내고 ISO인증서를 얻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부담이 클 뿐 아니라, 각국의 다양한 기준과 형식에 따라 여러 장의 인증서를 따로 얻어야 하는 어려움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국제대안무역협회가 새로 시작하는 ‘세계상표’는 생산자에게는 좀더 많은 이익을, 구매자에게는 대안무역의 의미와 싼값에 좋은 물건이라는 두 가지 이익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제3세계의 물건들은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는 친환경적인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있다. 거대한 기계로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이 아닌, 사람의 손길과 숨결이 담긴 인간적인 상품이다. 아름다운 무역은 대안무역의 정신에 동감하며 공정한 방식의 무역을 통해 온 지구촌 식구들이 빈곤과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아름다운 미래를 제3세계의 생산자들과 함께 일궈나갈 것이다.
paran@beautifulstore.org 두세평 될까말까한 회색 천막들이 간신히 하늘만 가린 채 다닥다닥 붙어 있다. 얼핏 안을 들여다보니 노인들이 변변한 이불 하나 없이 흙바닥에 누워 있다. 웃음을 잃은 어린이들은 초점 없는 눈으로 이방인을 바라본다. 악착같이 플라스틱을 모으는 사람들
세계사회포럼이 열리던 1월17일, ‘대안무역’ 단체인 국제대안무역협회(IFTA) 관계자들과 함께 인도 뭄바이의 ‘다라비’(Dharavi) 지역을 찾았다. 이곳은 30만명의 빈민이 모여사는 세계 최대의 빈민촌이다.

세계 최대의 빈민가인 인도 뭄바이 ‘다라비’ 지역에서 10대 소년들이 재활용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해 각종 주사기구와 링거병의 플라스틱 부분을 일일이 분리해내고 있다.

‘다라비’의 어린이들은 가난에 웃음도 잃어버린 듯 했다. 제3세계 생산자에게 판매가격의 15~30%를 되돌려주는 대안무역은 이들이 만성적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창조적 수공예품’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공동체에서 한 여성이 옷을 만들고 있다. 몇년 전만 해도 빈민촌이던 이곳은 6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제3세계 생산자’로 자리매김했다.

‘다라비’ 주민들이 모아온 플라스틱 조각은 마을 안 공장에서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