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욱연/ 서강대 교수 · 중국문학
70, 80년대 군사정권 시절 386세대 개인들이 겪었던 분산된 기억들을 끄집어내 영화라는 문화적 메커니즘을 통해 조직하고, 그리하여 개인들의 체험이 보편적인 경험으로 확대되고, 대한민국 386세대 공동의 문화적 기억, 세대적 차원의 공동의 기억으로 자리 잡게 하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런 공동의 기억을 토대로 세워지는 상상의 공동체는 386세대를 하나로 묶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전망보다 과거에 대한 공동의 기억으로 더 잘, 더 쉽게 하나가 되기 마련이어서, 이들 영화는 알게 모르게 이들 세대의 문화적·역사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아울러, 이들 세대 감독들의 작품이 폭넓은 대중적인 호응을 받는다는 것은 이제 이들 세대가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기억을 제조하고 유포하는 주도적인 세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럴 때, 386세대가 나이도 들고, 경력과 경제력 등을 구비하면서 한국 사회 각 분야에서 어느덧 주도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상징적 사건, 그 문화적 징후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그만큼 변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세대교체적 새로운 징후들 속에서 몇몇 386세대 감독들의 현대사 영화에 음습하게 스며 있는 구시대의 낡은 유령의 그림자를 함께 본다. <실미도>에서 강우석 감독은 영화를 통해 국가주의를 비판하려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미도>에는 그런 표면적 서사 밑에서 잠류하는, 그러면서 관객들, 특히 남자 관객들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또 하나의 흐름이 들어 있다. 근육과 힘으로 상징되는 진짜 사나이들의 세계에 대한 매혹, 철저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진짜 군인에 대한 이끌림이 그것이다. 그 매혹과 이끌림이 할리우드식 상업주의를 노린 데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떻게 미래로 향한 길을 낼 것인가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군사정권 시대 학교가 아니라 군 훈련장에서 성장한 386세대, ‘박정희 키드’ 세대들의 영혼 깊은 곳에 유령처럼 스며들어 있는 어떤 무의식, 자신들이 그토록 고통받았던 파시스트적 욕망에 자신도 모르게 귀신 잡힌 때문으로 보인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착하고 매너 있는 현수보다 강하고 단호한 우식에게 이끌려가는 은주는, 박정희 시대와 더불어 성장한 ‘박정희 키드’ 세대의 무의식의 초상, 아니 딱히 그들만이 아니라 한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혼돈스러운 지금 현실에서 강한 카리스마의 박정희를 갈망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무의식의 초상이 아닐까. 그래서 우식에게 은주를 빼앗긴 뒤 현수가 그토록 이소룡이 되고 싶어하는 것 아니겠는가. 폭군인 아버지와 싸워 결국은 아버지를 타도하였지만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유령과 어떻게 영화적 싸움을 해나가고, 그런 가운데 과거로 가는 추억을 넘어 어떻게 미래를 향한 새로운 길을 갈지, 한국영화의 새로운 주축으로 부상한 ‘박정희 키드’ 감독들의 이후 발걸음을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