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노동 관련 사안을 취재할 때, 대부분의 기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은 손낙구(42) 전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이다. ‘단병호 위원장보다 언론에 더 많이 나온다’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기자들 사이에서 ‘낙구 형’ ‘낙구 오빠’로 불리며 민주노총의 입 노릇을 해온 손씨지만, 올해 민주노총에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5년간의 대변인 역할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1986년 노동운동에 발을 들여놓은 뒤, 지난 10년간 손씨 이름 옆에는 대부분 ‘교육선전’ ‘홍보’ 등이 들어간 직함이 빠지지 않았다. 특히 1999년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이 되면서, 손씨가 쓴 보도자료·성명서는 1년에 500편이 넘는다. 많으면 하루에 성명서를 5~6건씩 써대고 온갖 선전물을 나르면서 손씨는 오른쪽 손목이 시큰거리는 ‘직업병’을 얻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미국대사관 앞에서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다 손가락 부상을 당했어요. 말을 하면 글로 입력되는 프로그램을 부인이 사다줬는데, 발음이 시원찮아서 그런지 도움이 안 되더군요. 결국 독수리 타법으로 성명서를 썼지요.”
손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문과 방송보도에 긴장을 늦출 수 없고 휴일도 제대로 없는 시간들이었지만, 돌아보면 꽤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고 자부한다.
특히 99년부터 여론화 작업을 시작했던 비정규직 문제와 주5일 근무제가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되었고, 민주노총 조합원도 크게 늘어난 점 등을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뿌듯하다. 반면, 혼자 눈물을 훔치는 일도 많았다. 지난 10월 숨진 한진중공업 김주익 위원장 등 ‘열사’들이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성명서나 보도자료로 만들다보면 누구보다 속사정을 깊숙이 알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언론의 통역자’를 자임하던 손씨는 주위에서 서운함을 전해오자 “교선실장을 그만둘 뿐이지, 노동계를 떠나는 건 아니다”라고 손을 내젓는다. 손씨는 대학원 입학 20년째인 올해, ‘해방 이후 기업별 노조의 형성과정’이라는 주제의 논문 탈고를 벼르고 있다.

‘노동자와 언론의 통역자’를 자임하던 손씨는 주위에서 서운함을 전해오자 “교선실장을 그만둘 뿐이지, 노동계를 떠나는 건 아니다”라고 손을 내젓는다. 손씨는 대학원 입학 20년째인 올해, ‘해방 이후 기업별 노조의 형성과정’이라는 주제의 논문 탈고를 벼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