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설 연휴가 끝나고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설을 전후해 전국적으로 내린 폭설은 고향 오가는 길을 답답하게 했지만, 제자리로 돌아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우리 모두에게 서설(瑞雪)의 추억으로 오래오래 간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설에 내리는 눈은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날 징조라고 하니 뭔가 좋은 기회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한동안 주위를 맴돌지만 그것이 보이지 않아 부지불식간에 사라진다고 하지 않던가. 자신이 기다리던 기회가 가까이 왔을 때 놓치지 않도록 맑은 정신으로 눈을 크게 뜨고 새롭게 다시 한해를 시작해보자.
수많은 기회 중에 올해 가장 간절하고 뜨겁게 달아오를 기회는 역시 취업과 정계 진출이 아닐까 싶다. 취업의 기회가 간절할 수밖에 없는 것은 청년실업의 고통이 계속 이어지고 ‘오륙도’ ‘사오정’에 이어 ‘삼팔선’마저 무너져내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일자리 만들기가 올해 최대 국정과제로 떠오르고 있으니 한번 기대를 해봐야겠지만 정부 의지대로 잘 풀려나갈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문제는 경제를 살리는 일일 터인데, 정부와 재계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항상 긴장해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설 연휴와 함께 4·15 총선도 사실상 막이 올랐다. 정치권의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많은 정치 신인들이 금배지의 기회를 넘보며 분주히 표밭을 누비기 시작했다. 검찰의 불법 정치자금 수사 이후 불어닥친 ‘물갈이’와 ‘바꿔’ 열풍을 견디지 못한 일부 정치인들이 줄줄이 불출마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 그들에겐 기회이다. 하지만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기성 정치인들 틈바구니에서 그들이 여의도행 열차에 오를 기회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아 안쓰럽다. 반면 유권자들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넓어졌다. 구태를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갈 신선한 인물들을 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유권자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만큼, 결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겠다.
좋은 기회를 잘 활용해야겠지만 견강부회식으로 기회를 만들어 누리려 하면 자칫 본전도 못 건질 수 있다. 설 연휴기간 중 각 정당의 대표들이 민심을 붙잡기 위해 고아원, 양로원, 노숙자 급식소, 재래시장, 기차역 등지를 찾은 것이 그것이다. 평소에는 그런 곳에 눈길조차 주지 않던 정치권이 총선이 닥치자 태도를 바꿔 그곳을 기회로 활용하려는 것은 싸구려 정치상술이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대북송금 관련자 특별사면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화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한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은 결정이었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 평가는 역사에 맡기더라도, 과연 두 사람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모처럼의 이 기회를 붙잡을지, 아니면 총선용 정치상술로 막을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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