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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땅을 일구며 아이디어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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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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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10·26사태 나기 얼마 전이었으니까, 78년이거나 79년쯤 될겁니다.”

농민 발명가 윤용길(49·충북 괴산군 청안면 백봉리)씨는 20년도 훨씬 더 지난 옛날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그때 제가 새마을지도자로 일할 때였는데 수원에 있는 ‘농민의 집’에선가 하는 데서 교육을 받게 됐습니다. 아, 그런데 변우량 교수라는 분의 말씀이 귀에 쏙 들어오데요. ‘주위의 모든 사물을 그냥 보지 마라. 발명은 먼 데 있는 게 아니다. 농민도 발명가가 될 수 있다’. 그때부터 평소 생활에서 불편한 점을 그냥 넘기지 않고 발명으로 이어가려고 애썼지요.”

윤씨는 이미 적지 않은 발명 성과를 이뤄놓고 있다. ‘차량 뺑소니 방지장치’, ‘에어컨 겸용 냉장고’ 등 6건의 발명특허를 지난 10월 출원했다. 물론 변리사를 통해 사전검증을 받는 절차도 거쳤다.

‘뺑소니 방지 장치’는 차량 범퍼 안쪽에 차량 고유번호가 기록된 플라스틱 공 10여개를 넣은 상자(가로 8㎝, 세로 15㎝, 두께 4㎝)를 설치, 60㎏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이 볼이 튀어나가며 사고현장 주위에 흩어지도록 고안됐다.

“충북지역에서만 한달에 100건이 넘는 뺑소니 사고가 나고 있습니다. 내 친한 친구 둘도 아버지를 뺑소니 사고로 잃었고요. 이런저런 점 때문에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윤씨는 “수십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4년여 만인 지난 8월에 완성했다”며 “이 장치를 차량마다 의무적으로 설치할 경우 뺑소니 문제는 완전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농사(1만5천평)와 느타리버섯(150평)을 재배하고 있는 그는 버섯 종균에 냉·온수를 값싸게 공급할 수 있는 냉·온 조절판, 그리고 적외선과 열선이 설치된 ‘위생 신발장’ 등 생활에서 겪는 불편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제품도 개발했다. 또 냉장고 냉동실의 단열층 부분에 라디에이터와 송풍기를 설치해 찬바람이 나오게 하는 에어컨 겸용 냉장고와 민간요법을 이용한 2건의 치료제도 특허 출원했다.


윤씨는 농사일을 하기 전에 10년 가까이(75∼83년) 전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당시 인기품목이었던 라디오 반제품을 조립해 팔거나 수리해 돈도 꽤 벌었다. 그러다 스물다섯 되던 해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전파사 운영 경력은 그뒤 발명품을 만들어내는 데 적지 않은 보탬이 됐다.

윤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도로를 포장할 때 조개껍데기와 명사(모래)를 첨가해 야간에 도로가 빛을 흡수하지 않고 반사하도록 하는 ‘야광도로’를 연구중이다. 또 식물재배용 제초지(종이)는 이미 농사에서 활용중이며 역시 특허 출원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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