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그늘 벗고 수사권 독립의 전초부대로… ‘고위인사 구속’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다
지난 1월15일 오후 5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특수수사과 사무실에는 어느 때보다 긴장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오십니다.” 이 한마디에 현관에서 ‘손님’ 맞을 채비를 갖추고 있던 주상용 특수수사과장과 7명의 팀장들의 표정은 한껏 고조됐다. 이윽고 현관으로 들어선 이는 바로 최기문 경찰청장이었다. 경찰청장이 특수수사과를 방문한 것은 지난 1978년 특수수사과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날 최 청장은 그간의 수사 상황에 대한 보고만을 듣고 ‘피의자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는 간단한 지시만을 내리고 자리를 떴다. 하지만 청장이 사무실을 들른 그 자체에 경찰에서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처음으로 경찰청장이 방문하다
“과거 특수수사과는 청와대 직속이었죠. 청와대에 먼저 직보를 하고 이후에 경찰청장에게 보고하는 일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경찰청장에게 특수수사과는 ‘멀리할 수도, 가까이 할 수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경찰청 관계자의 이야기다. 그런 특수수사과에 경찰청장이 방문했다는 것은, 특수수사과가 청와대의 그늘을 벗고 완전히 경찰의 직속기관이 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청은 특수수사과를 경찰 최고의 엘리트 수사팀으로 만들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드웨어도 바꾼다. 현재 20년 이상된 경찰청 남관에 ‘숨어 있던’ 사무실도 북관으로 옮길 예정이다. 현재 경찰위원회가 쓰고 있는 북관 건물을 70억원을 들여 ‘리모델링’한 뒤 현대식 시설을 갖춘 수사공간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비중 있는 인사가 소환될 때는 건물 앞에 언론을 위한 포토라인도 설치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특수수사과의 소프트웨어적 변신은 참여정부 출범 직후부터 본격화됐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최기문 청장은 취임하자마자 특수수사과장의 인사를 단행했다. 20여년간 감찰 업무를 주로 해온, 저돌적 성격의 주상용 총경(현 대구청 차장)이 발탁됐다. 김중겸 당시 수사국장(치안감·올 1월 퇴임)도 특수수사과에 강하게 변신을 주문했다. 특수수사과에 처음 주어진 임무는 ‘청와대 그늘 벗기’였다. 청와대에서 온 고위층의 비리 첩보 쪽지 한장으로 조사를 시작하고 청와대 직보로 매듭짓는 이른바 ‘쪽지수사’가 중단됐다. 주상용 과장은 “처음 부임해서 직원들에게 청와대가 공식적인 문건으로 수사를 요청하지 않으면 절대 수사에 착수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말한다.
두 번째 임무는 ‘수사권 독립을 위한 전초부대’의 역할이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전한다. “경찰에게는 그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었다. 그 선이란 정치인과 각 부처의 장·차관, 고위급 장성 그리고 대기업의 경영진은 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특수수사과에 주어진 임무는 그 선을 넘는 것이었다.” 즉 경찰이 대형 비리사건에서 검찰 못지않은 수사력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기회는 곧 왔다. 같은 해 5월 초, 특수수사과의 유일한 홍일점이던 당시 5팀의 강순덕(37) 경위가 현대건설의 군 공사 관련 비리를 제보받았다. 강 경위는 처음엔 건설사의 ‘흔하디 흔한’ 하도급 비리로 생각하고, 관련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6월5일 김아무개(54) 상무보를 긴급체포했다. 서울시청 별관에서 붙잡힌 김 상무보는 강 경위에게 “잠시 시간을 달라”고 몸을 돌리면서 부하직원에게 ‘뭔가’를 건넸다. 강 경위는 순간적인 직감에 김 상무보의 팔을 낚아챘고, 그 통에 수첩 하나가 떨어졌다. 장군들에게 뇌물을 바친 ‘치부책’이었다. 거기에는 ‘×장군 1,000’ ‘O장군 2,000’ 하는 식으로 뇌물 액수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군 비리 수사의 시작이었다. 군 공사의 하도급 비리 수사과정에서 5명의 전·현직 장성들의 수뢰 혐의가 줄줄이 엮어져 나왔다. 뒤이어 1차 ‘대형사고’가 터졌다. 하도급 비리로 구속된 전 국방부 시설국장 신아무개(57·예비역 소장)씨한테서 “김동신 전 국방장관에게 진급 대가로 1천만원을 줬다”는 증언이 나온 것이다. 특수수사과는 이 혐의로 지난해 11월5일 경찰 사상 처음으로 전직 국방장관을 불러 조사했다. 김 전 장관은 구체적인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즈음 경찰청 특수수사과에는 이원형 전 국방부 품질관리소장의 비리 사실에 대해 구체적인 제보가 들어왔다. 소스는 청와대였다. 이씨는 국방부 획득국장을 마지막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군내 최고의 무기 도입 전문가로, 경찰은 그의 ‘수상한’ 부동산 거래내역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10개의 차명계좌를 발견했다. 이 차명계좌를 통해 영화배우 ㅅ씨와의 결혼설이 나돌았던 무기업자 정호영(52·전 한국레이컴 회장)씨와 이영우(62·아파치헬기 중개업체 대표)씨 등 거물급 무기업자 5명이 줄줄이 구속됐다. 이는 ‘2차 대형사고’의 전주곡이었다.
‘혐의 입증’ 못하면 역풍 맞을 수도
군 무기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11일 오후 4시30분, 주상용 과장은 경찰청 2층 기자실에 직접 나타났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짧은 브리핑을 마치고 돌아갔다.
“구속된 정호영 전 한국레이컴 회장한테서 열린우리당 천용택 의원에게 수천만원의 뇌물을 전달했다는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하고 내일(12일) 오후 2시까지 특수수사과로 출두해 줄 것을 공식 통보했습니다. 천 의원은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됨을 알려드립니다.” 조간신문의 가판 마감을 30분도 채 남겨두지 않고 있던 경찰청 기자실은 그야말로 폭탄이 떨어진 분위기였다. 천 의원은 국민의 정부 시절 국방부 장관과 국정원장을 거쳤으며, 16대 국회에서 국방위원장까지 지낸 초거물급 인사였기 때문이었다.
경찰의 소환 요구를 받은 천용택 의원은 같은 달 27일 전격적으로 특수수사과에 출두해 관련 혐의를 조사받았다. 경찰은 천 의원이 정호영 전 회장한테서 2000년 6월에 5천만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두고 있지만, 천 의원은 두번에 걸쳐 3천만원을 후원금으로 받은 것이 전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2월 초순께 천 의원을 다시 불러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결국 특수수사과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대로, 경찰의 ‘금기’를 깨는 데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그 성공은 아직 절반에 불과하다. 먼저, 천 의원에게 적용한 혐의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경찰은 강한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또 이한선 치안감(전 경찰종합학교장)에 대한 직무고발 수사 등을 비롯해 최근 수사한 몇몇 사건이 ‘화려한’ 발표와는 달리 영장이 기각되거나 수사가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이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경찰 일부에서는 특수수사과가 경찰 수뇌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지나치게 무리한 수사를 펼친 것이 아니냐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경찰청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금의 특수수사과는 ‘달리는 호랑이 등에 탄 형국’”이라고 표현했다. 특수수사과가 호랑이를 올라타고 수사권 독립의 전초기지라는 고지까지 성큼 오르게 될지, 중간에 거꾸러져 호랑이 밥이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이태희 기자 | 한겨레 사회부 hermes@hani.co.kr

“범죄가 있으면 수사한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성역 없는 수사가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경찰청내 특수수사과 사무실 입구 모습.(김경호 기자)
경찰청은 특수수사과를 경찰 최고의 엘리트 수사팀으로 만들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드웨어도 바꾼다. 현재 20년 이상된 경찰청 남관에 ‘숨어 있던’ 사무실도 북관으로 옮길 예정이다. 현재 경찰위원회가 쓰고 있는 북관 건물을 70억원을 들여 ‘리모델링’한 뒤 현대식 시설을 갖춘 수사공간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비중 있는 인사가 소환될 때는 건물 앞에 언론을 위한 포토라인도 설치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특수수사과의 소프트웨어적 변신은 참여정부 출범 직후부터 본격화됐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최기문 청장은 취임하자마자 특수수사과장의 인사를 단행했다. 20여년간 감찰 업무를 주로 해온, 저돌적 성격의 주상용 총경(현 대구청 차장)이 발탁됐다. 김중겸 당시 수사국장(치안감·올 1월 퇴임)도 특수수사과에 강하게 변신을 주문했다. 특수수사과에 처음 주어진 임무는 ‘청와대 그늘 벗기’였다. 청와대에서 온 고위층의 비리 첩보 쪽지 한장으로 조사를 시작하고 청와대 직보로 매듭짓는 이른바 ‘쪽지수사’가 중단됐다. 주상용 과장은 “처음 부임해서 직원들에게 청와대가 공식적인 문건으로 수사를 요청하지 않으면 절대 수사에 착수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말한다.

현역의원에 대한 경찰 수사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2003년 12월27일 천용택 의원이 경찰청 특수수사과 조사를 받기 위해 자진출두 하고 있다.(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