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우리 사회의 모든 기득권자들이 그렇듯이, 문학 분야 역시 기득권에 집착한다. 기득권자들은 비판자의 존재 자체를 유령으로 설정한다.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더이상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자, 비판자의 인격을 문제삼는다. 비판의 적실성을 비판자의 인격과 비판의 심리적 동기를 자의적으로 추정해서 폄하하려고 하는 비과학적 심리주의를 활용한다. 이러한 태도는 문학 기득권자들의 상당수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사실과 맞물리면서 기묘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이명원 논쟁’을 바라보고 있으면 참으로 무참한 느낌이 든다. 이명원을 매도하는 논리들 중에는 도저히 지성인의 그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논리들도 있다. 심지어 삼류대 출신인 주제에 튀어보려고 감히 서울대 출신의 대가를 건드린다는 천박한 인신공격적 발언도 있다. 이것은 특수한 개인의 반응에 불과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러한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는 서울대 출신은 의외로 많다. 나는 진정한 엘리트주의에 반대하지 않는다. 인간의 능력에는 차이가 있으며, 그 능력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없을 때, 인간의 발달은 침체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엘리트주의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한 사회의 엘리트들이 사회 경쟁력을 높이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만일 한 사회의 엘리트들이 전근대적 집단주의에 함몰되어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면, 그 엘리트 집단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대는 드라큘라가 되어가는가 서울대는 신화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신화는 그것이 존재 이상을 명령하지 않는 한, 썩고 부패하며, 그 가치를 잃는다. 신화는 존재의 지평을 도달 불가능한 유토피아로 만들 때에만 그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들려는 부단한 자기 갱생 과정을 보여주는 원초적 담론이다. 신화가 ‘있는 것’을 신비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신비화를 통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할 때, 그것은 안쪽으로 고여 썩기 시작한다. F.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는 거울을 못 견뎌하는 수백년 묵은 추악한 드라큘라 백작을 보여준다. 젊은 조너선이 바라보는 거울을 목격한 드라큘라는 거울에 자기 이미지가 비치는 것을 견디지 못해서 깨어버린다. 혹시 서울대는 지금 그런 드라큘라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힘세지만, 이미 아름답지 않은 존재. 어쩌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거울을 들여다볼 용기를 잃은 존재. 서울대여, 추악한 불사신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매순간 거울을 들여다보며 내가 누구인가 끊임없이 질문하는 젊은 영웅이 되고 싶은가. 지금 그대의 거울은 어디에 있는가. 김정란/ 시인·상지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