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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판사와 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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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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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생활을 하면서 가끔은 기사쓰기란 것이 ‘위험한 외줄타기’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진실을 끝까지 추적해 어둠에 묻힐 뻔한 진실을 밝혀낼 때 느끼는 쾌감은 말할 수 없이 크지만, 한편으로는 본의 아니게 잘못된 보도로 인해 엉뚱한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언제나 뇌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뜬금없이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잡지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한번쯤은 이 문제에 대해 독자들에게 설명드릴 필요가 있다는 평소 생각 때문입니다. 사실 잘못된 보도는 어찌보면 언론의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고, <한겨레21>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한겨레21>은 잘못이 있을 경우 언제든지 열린 마음으로 독자들의 지적에 귀기울이려는 자세를 가지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더욱 솔직히 말해, 이번호에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최근 겪은 소용돌이의 과정에서 여러가지 소회가 많아서입니다. 발단은 지난 328호에 실린 김정란 상지대 교수의 ‘숨겨진 희생양들’이라는 제목의 논단입니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대학사회 재임용 제도의 시행과정에서 나타나는 폐해를 지적하면서 한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영근 교수를 한 예로 들었습니다. 박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을 놓고 ‘납득할 수 없는 심사결과’라는 지적이 있다는 요지였습니다. 이 글이 나간 뒤 한세대쪽은 즉각 이의를 제기해 왔습니다.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지요. <한겨레21>은 한세대쪽의 이의제기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는 판단 아래 외부필자의 글이기는 하지만 반론문을 충실히 게재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습니다.

잘 알다시피 교수 재임용 탈락이라는 사안은 으레 대학쪽과 당사자간의 주장이 평행선을 긋게 마련입니다. 거기에다 재임용 탈락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학사회 내부에 얽히고 설킨 복잡한 문제들이 내재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또 논문심사의 공정성을 외부의 제3자가 칼로 무 자르듯 재단하기도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실제 박 교수는 재임용 탈락에 승복할 수 없다며 법원에 소송을 내려고 준비중입니다.

그래서 <한겨레21>로서는 한세대쪽의 반론권은 충분히 보장하되 ‘적법하고 공정한 심사결과’라는 정정보도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한겨레21>이 그런 정정보도를 낼 경우 박 교수의 소송에도 어쨌든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형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한세대는 끝까지 정정보도를 고집했고, 결국 언론중재위원회 중재는 무산됐습니다. 그런 막무가내식 태도가 과연 대학운영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궁금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또 한가지 가슴에 다가온 단어는 우리 사회의 ‘중재와 화해’라는 말입니다. 중재란 말 그대로 다툼이 있는 당사자들의 중간에 서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말합니다. 때문에 중재자의 자세가 어떤가에 따라 화해가 이뤄지기도 하고 무산되기도 하는 게 세상이치입니다. 그러나 이번 논쟁에 중재자로 나선 사람들(중재부장 이진성 서울지법 부장판사)의 태도는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특히 중재부장의 거리낌없는 고압적이고 모욕적인 언사를 지켜보면서 기본적인 자질까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도리없이 이런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중재를 할 때도 이런 정도인데 재판을 할 때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판사의 떵떵거림에 하릴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민초들의 찢어지는 가슴은 어떨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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