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했던 연말연시를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설 연휴를 맞게 되니 사람들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 같다. 벌써부터 세뱃돈 타령하는 아들놈이 귀찮기도 하지만 휴식을 가져다주는 명절이니 절로 신바람이 난다. 그러나 조급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번 설 연휴는 꽤나 짜증스러울 수도 있겠다. 나름대로 알찬 새해 계획을 세워놓았는데, 뭘 좀 해보려고 하니 연휴가 닥쳐 맥 빠지게 됐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설 연휴도 우리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이니 따를 수밖에. 모두가 다시 한번 새해 계획을 가다듬는, 그런 여유 있는 설 연휴를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한겨레21>은 이번 설 합본호에 ‘변화에 성공한’ 평범한 사람들을 소개해봤다. 그들을 통해 한번쯤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그리 많지 않아서가 아니라, ‘변화’를 잊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안타까운 탓이다. 일터에서 빨리 사라지라고 닦달하는 세상을 살면서 그럴 여유가 어디 있느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럴수록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변화’를 꾀하는 노력은 아름다워 보인다. 반면 오로지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변신’을 시도하는 것은 어리석고 무모한 일로 경계해야 한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되, ‘변신’에만 목을 매지 않는 지혜가 필요한 세상이다.
막노동꾼에서 서울대에 수석 입학한 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을 써 화제를 모았던 장승수씨가 최근 사법시험에 합격해 7년여 만에 또다시 화제가 됐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주목한 것은 사법시험 합격이 아니라 프로권투 신인왕전에 도전하기 위해 권투 글러브를 끼고 있는 그의 모습이었다. 그가 “대학입시 공부를 하면서 내가 얻은 게 있다면 사람에겐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배워야 할 것은 산더미 같고 내가 넘어야 할 한계도 무수히 많을 것이다. 새로운 한계들을 뛰어넘기 위해 나는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야 한다”고 말했듯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무모한 ‘변신’의 귀재는 단연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구속 수감되면서도 옥중 출마를 통해 명예회복을 다짐할 정도다. 현역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러시를 이루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설을 지내고 나면 본격적인 17대 총선 정국에 접어들 것이다. 어떤 정치인들이 무모하고 어리석은 변신을 또 시도하는지 유권자들이 가려내야 한다. 설과 함께 갑신년 원숭이 해가 시작된다. 원숭이에 얽힌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올해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교훈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어둡고 음습한 과거를 숨긴 채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거듭하는 정치인들에게 또다시 속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런저런 시름 잠시 잊으시고, “나도 변화할 수 있다”는 넉넉한 마음으로 고향길 다녀오시길….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사진/ 한겨레 임종진 기자









